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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Oct 04. 2016

영화 '최악의 하루', 이토록 뻔한 연기

"세상은 무대 인생은 연극 우리는 배우"

역시 "세상은 무대 인생은 연극 우리는 배우".


이토록 뻔하고 가증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또 있을까. 은희는 불쌍하다. 놀랍도록 평범해서 더 그렇다. 뻔하게 속 보이는 연기를 주고받으면서도 서로의 체면 혹은 더 깊은 문제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체하는 우리 모습을 그대로 반영해 더 애틋하다. 그런 연기가 불편하고 숨 막혀 일상을 탈출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가도, 결국 또 다른 연기의 모습들과 마주하고 나서는 별 수 없구나 하게 된다.


은희도 마찬가지다. 은희의 남자 친구도, 이혼남 애인도 그렇다. 모두가 다 속고 속이는 연기를 하면서도 또 그걸 모르는 게 아니면서도 서로의 관계를 위해 그 덮개를 치우지 않는다. 그러다 희생양이 생기거나 극적 탈출구가 마련되고 나면 그 어딘가 모르게 팽팽한 연기에의 모종의 합의는 무너지고 만다. 그 무너짐을 눈 앞에서 감당해야 했던 은희의 참담했을 마음이 참 무겁고도 씁쓸하다. 웃기기까지 하다.


삶에서 마주하는 연기를 굳이 찾아볼 필요 없다. 내가 아닌 주위 관계에 대하는 그 순간이 모두 연기일 테니까. 어쩌면 나에게도 연기를 하고 있을 거다. 거창하게 '연기'라는 단어를 써서 그렇지, 뭐랄까. 본모습을 보이지 않고 타인을 대한다는 것. 그게 바로 연기다. 일상이 거짓말 투성이고, 사실은 오늘 하루 내내, 그리고 당신과 마주한 지금까지 연기를 했다는 은희의 고백은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쓸 공간을 찾고, 정말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런 다른 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심리도 마찬가지일 테다. 진짜 소통을 하고 싶다. 연기 말고 내 진짜 이야기를 그래도 어딘가에는 적어두면 누군가는 읽고 공감하지 않을까. 그걸로 됐다. 혹은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작은 소망들이 이 공간을 채워나가는 힘이겠지. 익명의 온라인 공간이 발달하는 것도 그런 일환일 테다. 누군가는 그곳에서도 연기를 하겠지만 말이다.


은희를 보고 싶어 영화관에 두 번이나 예매했던 일이 기억난다. 그러다 사정이 생겨 취소했었다. 말이 사정이지 보고 싶은 사람이 생기거나 일이 있었던 거다. 그때마다 일부러 과장해 영화까지 취소했어 하는 것은, 진실이지만, 연기가 아니라 정말 절실했다는 걸 증명해줄, 희생을 담보하지 않은 얕은 진실이었다. 그런 순간만큼은 어쩐지 당당해지고 마음이 편하다. 은희가 하는 거짓말 중 사실들도 그런 맥락이다.


은희가 가상의 인물이든 료헤이의 머릿속 주인공 이든 간에, 료헤이가 그린 현실이 결국 해피엔딩을 맞는다고 또 관객에게 연기해줘서 고맙다. 불편한 마음을 연기하게 된 관객이 그래도 영화의 얕은 위로로 편안하지만 여운을 갖게 됐으니 말이다. 영화 속 은희의 모든 행동, 이혼남의 대사. 우습고도 짠한 두 사람의 거짓말 합이 참 우습고도 평범했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속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건 웬만해선 깨지 않는 편이 암묵적 예의일 거다. 그 선을 넘어서는 걸 요구하는 건 특별한 사이다. 친구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다 말할 수 없는 게 있다. 은희처럼 극단적일 수 있는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일상 자체가 그렇다. 그걸 갑자기 깨라고 요구하는 이에게는 거부감이 들고, 나만의 공간을 찾게 되는 건, 연기를 하는 것에 익숙해서일까. 아니면 진실을 내보인 후 공감받지 못할 상황이 두려워서일까.


영화 속 한국을 '낯설게' 만든 기법도, 은희의 씩씩거리던 발걸음, 숨소리조차 납득이 갔던 연기도…. 다 특별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연애도 다 서로 속고 속이는 연기에서 나온 것에 불과함을, 그리고 그 후에도 연기가 지속되지 못할 경우는 언제든 끝날 수 있음을, 혹은 달리될 수도 있음을 열어둬 더 현실적이다. 사람 일은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드물기 때문이다. 은희의 거짓말이 무겁게 그려질 필요가 없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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