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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Dec 13. 2016

혼자가 좋아

늘 함께 걷던 횡단보도를 따라 걸었다. 혼자서 걸었다. 운동을 끝내고 나선 길이었다. 책방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쉴 시간이 조금 주어졌다고, 용케도 생각이 잘 정리됐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이해가 깊어지고 다시 내 안에 중심이 생긴다. 그걸 잃어버려서 너무나 당황스러웠는데 이젠 괜찮다. 시간이 이렇게나 값진 선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혼자가 좋다. 함께 걷는 길을 홀로 걸으며 문득 더 생각했다. 있었던 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골똘히 생각해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흘러간 일들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것. 그것은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하다. 그건 꽤 값지고 좋은 기회다. 하루 있었던 일들을 홀로 앉아 정리하고 그게 사실을 별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걸 허투루 들을 용기도 가져야 한다는 걸 굳은 결심으로 일부러 읊지 않아도 자연스레 마음속으로 정리되는 것. 그건 다 혼자 있는 시간에서 나오는 지혜다. 이젠 별 게 아닌 일이 되고, 귀담아듣지 않게 된다. 지난 시간 괴로웠던 일들이 금세 빛나는 순간들로 바뀌어 얼마든지 웃어넘길 에피소드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다.


같은 연말인데 내 모습은 이렇게나 달라져 있다. 별반 달라질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다. 그러면서 다시 중심을 찾았다. 어렵게 되찾은 만큼 다시 잃고 싶지 않아서, 정말 가볍게 생각하려 한다. 인연이 아닌 것이면 아닌 거다. 가볍게 말하고 생각하며 단순하게 묵묵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힘을 다시 얻은 기분이라, 이걸 아주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다. 사람이든 일이든 어디든 그게 나와 닿았다면 만날 인연이었던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니까. 의미 두지 않는 일. 또, 만나게 된 것에는 감사하던 습관. 꽤 오랜만에 다시 떠올리게 됐다.


물론 거리두기를 통해 가능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멀찍이 떨어져 있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수 있게 된 거다. 늘 실천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 뭔지 몰라 미지수지만 그냥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묘하지만, 이것도 현실이고 저것도 현실이니까. 내 자아는 둘 다 원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아직은. 그때까지는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내맡기는 것도 방법일 거다. 조금만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서 내 안의 중심을 잘 돌보는 일에 신경 써봐야겠다.


생각을 비우고 좋아하는 것을 하자. 자기 화를 표출하며 그 틈을 비집으려는 사람을 만나면 튕겨내자. 탄력을 갖자. 유연성 말고 탄력. 그게 필요하다. 뭐 돌려 말할 필요도 없이, 잠시나마 내 시간을 갖는 동안 충분히 멍 때리고 충분히 생각이 알아서 정리될 시간을 확보해 너무나 좋았다. 뇌는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놀라운 것을 할 수 있기에,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차곡차곡 데이터들을 잘 정리하고 때론 합리적 추론을 내놓으니까.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주면 되는데, 근래의 나는 너무나 바빴다. 억지로라도 그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멍하니 있은 후 데이터가 각자의 자리로 갈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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