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장녀이다. 친해지는 단계일 즈음 형제 관계를 서로 묻다 보면 신기하게도 “장녀”인 경우가 많았다. 만났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뭔가 서로 비슷한 면이 많아서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느낌이 오면 장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동생 있어?”
“응.”
“그럼 너도 장녀?”
“너도,,, 장녀?”
이 대화 끝엔 서로에게 짠내 나는 측은한 눈빛을 짧게 교환한 후, 해탈한 듯한 실소를 뿜어낸 경험이 많다.
장녀에게는 장녀만이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예전에 엄마가 말했다.
“너희 둘이 어렸을 때 네가 받아쓰기에서 95점을 받아오면, ‘이렇게 쉬운 걸 왜 틀렸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동생이 받아쓰기에서 30점을 받아오면, ‘내가 알려준 적도 없는 데 이런 단어들을 어떻게 맞았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이게 장녀와 막내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 차이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이다.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에겐 항상 모범생의 이미지였지만, 엄마한테는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딸이었다. 95점을 받으면, 더 잘할 수 있는 애가 노력을 덜 해서 하나를 틀려온 거였다. 많은 걸 타고난 아이이고, 더 잘할 수 있는 아이인데, 그저 기대에 조금씩 못 미치는 딸이었다. 하지만 난 내가 가진 능력치에서는 늘 최선을 다해왔다. 최선을 다해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목마름이 조금씩 남아있었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야 내가 가지고 있는 이런 잠재된 마음이 ‘장녀 콤플렉스’의 일종이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가 이런 말을 듣는 다면 내게 희생과 헌신만을 강요한 것도 아닌데 무슨 ‘장녀 콤플렉스’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꼭 경제적인 희생과 헌신 외에 정서적인 부분이 더 큰 부분이다. 장녀를 포함한 첫째들의 성취는 보통 그 나이 때 또래들이 하는 보편적인 성취로 치부되어 큰 칭찬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막내들이 이뤄내는 성취는 어리디 어린애가 기특하게도 이루어낸 귀엽고 지대한 성취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24살에 갓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이리저리 치이며 힘들어하는 날 보며 나이도 꽉 찬 아이가 징징거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30대가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동생을 보며 “꼬맹이가 언제 커서 벌써 월급 받고 그래?”라며 마치 10대 정도의 아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내셨다.
날짜로 치면 고작 700일 정도 차이나는 막내와 내가 엄마 눈에는 7년 정도, 아니면 그 이상의 차이 정도로 느껴지나 보다. 이제는 ‘왜 그러지?’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때때로 막내만의 특권, 이를테면 두 번째라서 생긴 포용감에서 오는 허용 범위의 확장, 첫 번째의 시행착오에서 느낀 후 좀 더 개선된 양육 방식의 수혜, 항상 상대적으로 ‘어리다’는 시선이 전제가 된 수많은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많은 특권이 특권인지도 모르는 깜찍한 여유로움 모두가 부러울 때는 가끔 있다.
다음 생에 또 한 번 더 태어나게 된다면, 첫째는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