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 05 일상 중의 한 장면
여름 야구는 평화롭고 치열한 저녁시간이다. 이석원 작가님의 글에도 야구가 종종 나온다. 아버지가 퇴원하시고 집에 오셔서 평범하게 야구 경기를 시청하는 것이 아들의 소원이다. 여자친구와 따로 각자의 집에서 같은 야구 경기를 시청하며 통화한다. 야구를 공유한다는 것은 매일의 저녁을 공유한다는 얘기이다. 왜 야구는 매일 해서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피폐해지는지 모르겠다. 김현수 선수는 야구는 매일 기회가 생기는 스포츠라고 한다. 오늘 안 되면 내일 또 하면 되는 것이라고. 그 모든 기회를 지켜보려는 팬들은 자꾸 욕심이 난다. 어쨌든 스포츠는 승패라는 결과로 이야기해야 하고 시즌이 끝나가는 가을야구의 목전에서 예민하다, 예민해진다.
결과 얘기를 해서 말인데 왜 봄부터 내내 고생했는데도 마지막 게임을 이기지 못한 좌절에 괴로워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배신감도 느낀다. 8월에 과다 복용한 행복은 잊고 지금 실패에 아파한다. 내리 3연패 하면서 시즌을 마감할지 몰랐다. 마지막 승을 위한 축포는 세팅만 몇 번째인지. 오늘도 뼈 아픈 실망을 하는구나. 144게임을 안전하게 완주한 것은 선수들과 팬들 모두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며 퇴장하는 것. 그조차 바라보기 힘든 것. 스포츠란 그런 것이다.
비와서 한 시간 정도 지연된 또 다른 경기장의 경기는 이미 결정 난 경기였다. 요즘 야구는 실시간 승리 확률을 보여준다. 9회 말 2 아웃 잡고 승리 확률 99.4%. 누가 이 상황에서 0.6%를 기대하는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게 야구지만 그 시점에 0.6%에 기대하는 사람은 미련한 거다. 하지만 어제는 이 그 미련이 일을 냈다. 아웃카운트 한 개 남겨두고 2개의 투런이라니. 드라마를 써도 이렇게 쓰면 판타지라고 한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그림이다. 그곳에서 매직넘버 1이 지워졌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반전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고개 숙이면서 나간 선수들이 돌아와 기뻐하는 모습에 안도했다. 미안해하지 말고 펑펑 즐겼으면 했다. 좋은데 생각이 많고 기쁜데 겸손해진다. 자력으로 이룰 거라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숙연해진다. 야구가 뭐라고 인생을 보게 한다. 매일 증명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애쓰고 있다. 나 잘났다 살고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또 힘을 내 변화한다. 어제는 놀랐지만 오늘은 또 힘을 낸다. 뜨거운 여름 저녁 일상 속의 소소한 때론 대대한 추억. 그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