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에이드 Jan 16. 2024

새치 염색 할 때 됐네요

"아빠. 내일 졸업식에 멋지게 하고 와. 뭐 입고 올 거야?"

"아! 아빠 머리 염색부터 해야 돼."

"자기야, 나는 어때? 괜찮아?"


남편과 나는 새치가 빨리 왔다. 40대 초중반의 나이이지만 부지런히 염색하지 않으면 눈처럼 덮여버리고 만다. 남편은 일찍이 현실을 받아들여 염색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듯하다. 본인이 알아서 세일할 때 염색약을 사 와 욕실장에 차곡차곡 채워둔다. 염색 후 욕실 곳곳에 묻어 있는 염색 흔적들이 처음엔 짜증이 났는데 지금은 애잔하다. 친정 아빠는 염색약 사는 것부터 일일이 엄마가 다 해 주었는데 '혼자서 이 정도면 애쓴 거지.' 하며 적당히 넘어가 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빨리 온 새치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친정 엄마 아빠도 새치가 없으셨다. 일흔 살 엄마보다 내가 더 열심히 염색하는 거 같다. 4달에 한 번씩 염색했는데 지금은 빠르게 올라오는 새치에 2달도 못 버티고 염색을 하러 나선다. 


새치- 젊은 사람의 검은 머리에 드문드문 섞여서 난 흰 머리카락 <표준국어대사전>


"이렇게 평생 염색하며 살아야 하나? 내 두피는 안녕할까? 이젠 미용실에 파마하러 가지 않아. 염색하러 가는 거지."

"그냥 인정하고 편하게 살아. 가면 가는 거지." 


새치를 그냥 두었던 시기가 있었다. 굳이 가리고 싶지 않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헉, 염색할 때 됐어." 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염색을 하면 하는 건데 왜 그렇게 놀라는지 묘하게 기분이 상해진다. 더 버티려 했지만 나의 새치에 관심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그들의 꼼꼼한 참견(?)에 결국 염색을 했다.  뿌리 염색으로는 안 되는 전체 염색을 하니 미용실에서 "십 년은 어려 보여요." 란 말을 들었다. '십 년씩이나...' 염색한 나보다 본인이 더 만족하시고 시원해했다. 


그 이후에도 나는 게으른 염색으로 십 년의 세월을 왔다 갔다 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산 것 같다. 늙은 엄마여도 괜찮았고 가끔씩 만나는 오랜 친구들이 안쓰러워해도 날 걱정해 주는 시선도 꽤 괜찮았다. 새치를 두고 싶었지만 가려야 하는 현실과 마주한 것은 그보다 한참 뒤 일을 하게 되면서였다. 한 시즌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던 거 같다. 같이 일하던 동료의 (지금 생각해 봐도 어이없는) 외모 지적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게 당황스러웠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옷도 제대로 안 갖추고 없고 머리도 단정하지 않은 예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살면서 단정하지 않다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내 생각엔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이 예의 없는 것 같은데요.' 침묵을 선택한 나로 인해 별안간 공기는 얼어붙었고 내 속은 분노로 끓었다.   


인간은 본래 혼자 살 수 없고 사회적인 의미 안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존재이다. 외향형이던 내향형이던 집단 안에서 개인에게 내려지는 분류 아니던가. 사회는 개인을 둘러싸고 있어서 존재를 묻는다. 따라서 인간은 자발적으로 혹은 타의적으로 사회 안의 나를 인지한다. 강한 타의적인 인지는 무의식에서 나의 나됨을 흔들어 버렸다. 며칠간 지속된 상한 기분을 걷어내고 나를 보니 나는 이미 온라인에서 옷을 결제했고 머리도 염색했다. 그가 말한 방법은 옳다고 볼 수 없지만 사회생활을 이어 나가려고 한다면 '나의 단정함'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 예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내게 차리는 예의라는 선에서 새치 염색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잡았다. 속상함 보다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서 하게 되는 메이크업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20대에 설레면서 시작하는 화장과는 비교하기는 조금 어색하지만 이전만큼 복잡한 마음은 아닐 수 있었다. 그리 유쾌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시선을 사회에 돌려서 해결할 수 있었다. 각자의 방식과 방향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 사회이므로 어느 정도 수용하며 나를 만들어가는 유연함이 생겼다고나 할까. 딸 졸업식을 앞두고 새치 염색을 하는 것은 예의를 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 



Image downloaded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낯가리는 엄마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