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 친구들과 함께한 2박 3일 제주 여행
"그러니깐 엄마 친구들과 여행 가는데 같이 간다는 거지?"
"응. 다 같이 제주도에서 만나기로 했어"
"엄마도 친구 있어?"
"응. 엄마도 친구 있어."
"몇 명인데?"
"4명, 모두 중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야."
때는 바야흐로 중학 시절이었다. 친구들과는 서로 다른 중학교를 다녔지만 우리는 교회에서 친해졌다. 당시 교회 성가대 알토 파트에서 만난 우리는 예배 후에도 계속 붙어 다니며 짜장 떡볶이도 사 먹고 햄버거도 사 먹었다. 그렇게 같은 시기에 같은 나이로 만나 같은 공간에서 나이를 먹었다. 대학교, 직장 생활을 하면서 때론 멀어지고 때론 가까워지더라도 어제 만난 것처럼 만나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이런 우리들에게 결혼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 만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결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과정은 확실히 친구 중심 싱글의 삶을 (두 배로 늘어난) 가족 중심으로 180도 전환시켰다.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만남을 유지하려 애썼다. 일종의 생존신고였다.
"이 날만 기다렸다. 조심히 오셔."
"응, 오랜만이니깐 시간 꽉 채워서 얘기하자고."
"5시까지 가려면 4시까지는 떠들 수 있어. 알람 맞춰 놨어."
바삐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보내고 만나는 이른 점심 약속은 꿀맛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봇물 터지게 내려놓는 이야기들을 지겨워하지 않았다. 남편, 시어머니, 시아주버니, 회사 상사, 애들 유치원 친구엄마, 옛 친구 얘기 다양한 주제가 시시각각 변했지만 알아서 척척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 걱정 마라 쉬지 말고 얘기해라. 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게 우리는 근근이 친구의 명목을 이어나가고 안부를 물어왔다. 느닷없는 카톡이 불편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이들 중에 하나가 이 친구들이다.
친구들과 더 늦기 전에 용기 있게 여행을 계획했다. 날짜를 맞추고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제주행 비행기표 하나 예약했을 뿐이데 설레고 행복하다. 혼자는 갈 수는 없다. 친정, 남편 여기저기 물어보자니 괜히 복잡해지고 아쉬운 소리 하기 싫고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것이 현실적인 가장 심플한 옵션이다. 친구들도 상황은 같았다.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다 키운 친구를 제외하고는 여지없이 1+2 아이 2명과 함께 하는 여행이 되었다. (괜찮아. 우리에겐 카니발이 있잖아.)
제주도 공항에서 보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여행은 뭔가 사람들을 들뜨게 하면서 새롭게 보이는 매력이 있다.
"안녕하세요."
쭈뼛거리며 아들이 인사한다.
"어머, 네가 성민이구나, 많이 컸다."
"어머어머, 넌 안 물어봐도 알겠다. 아빠랑 똑같이 생겼네."
엄마들 여행에 끌려오다시피 한 아이들끼리 어색한 인사가 오간다. 상기된 기분 탓인가 서먹해하는 공기까지도 사랑스럽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들의 수다로 너희의 어색함 다 몰아줄게. 엄마들은 다 동갑인데 애들은 7살 쌍둥이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 다양하다. (결혼과 육아 시기는 우리 맘대로 되는 게 아니지.) 고등학생 오빠와 대학생 언니가 안 와서 얼떨결에 올해 중학교 입학하는 우리 딸이 연장자가 되었다. 엄마들 흥에 애들도 큰 무리 없이 잘 어울려서 알아서 잘 지내는 것 같다.
"야, 너무 좋다. 우리 자주 이런 시간 만들자."
"그러게. 이렇게 나오니깐 재미있다."
"애들 좀 키우니 이렇게 여행 올 수도 있고 말이야."
"둥이들이 선방하네... 데리고 다닐 만하다."
"나도 아빠 없이 처음 데리고 와 봤어. 니들이 있으니깐 했지 못했을 거야."
2박 3일 비가 계속 내렸다. 날씨에 상관없이 다 같이 먹으러 다니고 실내 체험 위주로 관광을 다녔다. 패키지인 듯 패키지가 아닌 여행이다. 친구들과 함께 서칭을 하고 계획을 짜니 가족 여행과는 다른 맛에 나도 신이 났다. 숙소가 제주 동부 구좌 쪽이어서 그 일대로 여행을 하였다.
"오늘은 이른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고 공연을 볼 거야. 공연 시간 전에 도착해서 근처 핫한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너넨 초코 마셔. 또 공연 보고 박물관에 잠깐 갔다가..."
"이모, 오늘 저녁엔 숙소 가서 간단히 먹어요."
계속되는 체험, 맛집 행군에 지친 딸이 친구에게 말한다.
"저녁에 회 먹을 건데, 괜찮겠어?"
"회요? 회는 못 참죠. 갈 거예요."
친구들 모두가 즐겁다. 이럴 땐 시간이 늦게 흐르거나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보내기 아쉬운 시간이다. 체력만 따라준다면 밤늦게까지 수다 떨고 싶은데 엄마들도 자야 한다. 아쉬운 마지막 밤이 지나고 있다.
"딸, 엄마 친구들 보니깐 어때?"
"이모들 다 좋아. 엄마 친구들 만나니깐 다 정이 넘치고 편안해 보여. 수진 이모는 쌍둥이 키우느라 힘들겠어 "
"이모 걱정도 해주고 다 컸네. 우리 딸."
이런 작은 기억들이 친구들과 아이들 모두에게 한 편의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그들의 삶을 따뜻하고 잠시라도 부자임을 느끼게 해주는 부요함의 추억 말이다.
"선생님, 럭셔리한 삶이 뭘까요?"
"럭셔리한 삶...... 나는 소유로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아.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값비싼 물건이 아니고요?"
"(놀라며) 아니야. 똑같은 시간을 살아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은 산 게 아니야. 스토리텔링이 럭셔리한 인생을 만들어. (이하생략)"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집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값비싼 명품백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럭셔리' 그 자체라는 것이다. 나에게 럭셔리 가방, 보석과 비길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있는 친구들에게, 함께 이야기를 만든 우리의 2세들에게 무척이나 감사한 시간이었다. 친구들아, 우리 꾸준히 럭셔리하자꾸나. 고맙다.
*2박 3일 제주 동부 숙소, 체험, 맛집 공유합니다*
숙소: 제주 스테이오후 https://blog.naver.com/stay_oohhoo
체험: 스누피가든 https://www.instagram.com/snoopygardenkorea
스카이워터쇼 http://www.skywatershow.co.kr
해양동물박물관 http://www.jejumarineanimal.com
맛집: 제주 호자 (구좌 돈가스 맛집)
제주 옹기밥상 (옥돔구이, 제주흑돼지수육)
블루보틀 제주카페 (비자림 근처)
일미도 (구좌 도다리회맛집, 현지도민추천)
나이테 (구좌 세화 오션뷰 크로플 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