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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Mar 22. 2024

개학, 그들의 세상이 열렸다

드디어 그들의 세상이 열렸다. 3월의 이슈는 누가 뭐라 해도 개학 아니겠는가. 뺨에 닿는 쌀쌀한 봄 향기와 (혹은 봄이라고 생각하고픈 추운 바람과) 함께 찾아온 등교하는 학생들의 물결. 장관이다. 내가 학부모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학교 가려고 나서는 아들 얼굴에 살포시 올라온 긴장과 함께 기대의 눈빛을 읽었다. 


"학교 가기 싫다."


"아들아. 사실은 궁금하잖아. 새로운 반. 선생님과 친구들."


"그렇긴 하지."


'오래가지 않을 흥미인 걸 알지만 그런 느낌... 너도 싫지 않잖니.'

엄마는 속으로만 생각한다. 이제 초등 5년 차에 들어가니 익숙해질 법하기도 한 학교 생활이지만 새롭고 희미하면서 분명한 기대감이 있다. 시선을 돌려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보니 흡사 신세계로 들어가는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교복을 입고 나서는 뒷모습에 엄마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울컥하는 청승이 올라온다. 사실 새 학기 증후군은 엄마인 나에게 있다. 학창 시절 낯을 가리는 내향형 인간이라 가슴 쿵쾅거리는 긴장감을 누르고 새 학기 새로운 반을 들어갔던 그때 공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게 왜 날 닮지 않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딸에게 이입이 되는지 모르겠다. 딸을 보내놓고도 긴장감에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 나란 인간. 흠.  


출처. 카붐픽스


남편은 1주일간 출장을 갔고 몸이 편찮으신 친정엄마가 집에 잠시 와 계셨다. 살림살이는 괜히 바빴고 아이들의 새 학기도 빠르게 1주일이 지났다. 아들에게 살짝 왔다간 긴장감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8시까지 느긋하게 자다 학교를 나선다. 흡사 군기 빠진 말년 병장 같은 느낌이다. 5년 차의 여유로움이랄까. 워낙 주변을 생각 안 하고 자기 세상만 보는 철 안 든 초등학생의 표본이다. "아들아, 할 건 해야 한단다."

 


딸은 동아리 선택하고 자소서 쓰느라 바쁘다. 신입 중학생은 초등 고학년보다 느슨한 것 같은 반면에 확실히 글은 많이 쓰고 있다. 매일 자소서 쓰고 있는 느낌. 초등학교였으면 학기 초 쏟아져서 나오는 공문 쓰느라 내가 작문 중이었을 텐데... 중학생이 되니 딸이 알아서 파일링하고 필요한 것만 사인받겠다고 온다. '이거 괜찮군.' 속으로 감탄하지만 티 내진 않는다. 사춘기가 뭔지 본인이 썰을 푸는 얘기만 반응하면 된다. 괜히 내 생각 말하면 길다고 안 듣고 시간 없다고 안 듣고  맘만 상한다.  친구, 선배 얘기라면 귀가 그리  커지면서 내 이야기는 자체 볼륨 다운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게 되는 걸 어쩌겠나. 



아이들의 개학 즈음하니 마치 시즌 상품같이 유튜브, 인스타그램에 새 학기 준비물, 새 학기 반장선거, 새 학기 학부모총회, 학년별로 꼭 필요한 것들, 중학 생활 꿀팁 등 다양한 영상들이 세트 상품처럼 쏟아진다. 이전엔 얼마나 정독하면서 필기하면서 들었던가. 지금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필요한 것만 걸러낼 수 있는 의지가 생겼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렇게 학부모의 연차가 쌓이면서 설렘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며 보낼 수 있는 깜냥이 생겼다. 나도 애들도 차분한 이 텐션이 조금은 낯설긴 하지만 3월 첫 주 막 지나고 있을 뿐이다. 뭔가 세팅되기 위한 단계들을 밟아가는 시간들이다. 다음주가 되면 총회가 있을 테고 학부모회장선거와 개인 상담 일정들에 대한 공문이 줄줄이 오겠지. 나름 일어날 일들을 예측해 보게 된다. 3월은 참 빠르게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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