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뭐야." 조심히 우회전을 하고 10미터쯤 갔을까 순간 뭔가 차 앞에 나타났다.
"고양이, 고양이야, 엄마."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입에 물고 길을 건너고 있다. 더 놀란 것은 어미 고양이 뒤를 따르는 새끼 고양이가 한 마리. 까만 몸에 하얀 양말을 신은 작은 새끼 고양이가 보였다. 그렇게 작은 고양이는 처음이다. 새끼를 문 어미 고양이는 따라오는 새끼를 보면서 길을 건너 반대쪽 화단으로 다급히 들어갔다. 무사히... 그런데 어미를 뒤따르던 새끼 고양이는 어미를 놓치고 헤매다 내 차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아파트를 진입하고 만난 길이라서 큰길은 아니지만 뒤 따라오는 차가 있었다. 그래도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비상등을 켜니 알아서 뒷 차가 조심히 지나갔다. "이를 어쩌냐." 옆 좌석에 탄 딸이 내렸다. "야옹아, 나와, 거기 있지 마." 새끼 고양이는 차 아래서 계속 움직이나 보다. 고양이를 불러내는 게 일이었다. 다행히 반대쪽에서 오는 차에서도 새끼 고양이를 발견해서 고양이가 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드디어 하안 양말을 신은 고양이가 화단 쪽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간 반대 화단이다. 이런... 새끼 고양이는 결국 길을 건너지 못한 셈이고 엄마와 떨어지게 되었다.
"왜 하필 반대쪽으로 갔을까. 어미가 찾아갈까." 아파트 내 길고양이들이 있다. 저 검은 어미 고양이도 자주 보았던 고양이다. 요 며칠째 고양이를 만났던 길에서 두리번거리며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를 찾는데 발견할 수 없다. 먹을게 좀 있을까 걱정이 된다. 아파트 내 사람들이 곳곳에 고양이와 물을 둔다. 고양이를 키우는 아랫집도 길고양이가 먹이를 부지런히 챙겨준다. 어떤 사람은 입양을 하려고 했는데 구내염도 심하고 아파 보여서 감히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새끼 고양이들이 잘 있을까 싶은데 누군가 구조해서 안 보이는 것일 수 있으니... 그렇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본 동화책에는 고양이가 많이 나온다. 참 신기할 정도로 많이 나온다.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 중의 하나는 주인이 있는 집 고양이었는데 어떤 사유로 길고양이가 되었다. 이 고양이는 학교 급식에 고기가 나올 때마다 온다. 다들 놀랍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 고양이는 글을 읽을 수 있는 고양이었던 것이다. 식단을 보고 방문했다는 이야기. 이쯤 읽었을 때 애들이랑 빵 터져서 떼굴떼굴 구르며 깔깔 거리며 웃었다. (그랬던 시간이 있었네.) 참 유쾌한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책 제목이 생각이 안 나서 아쉽다. 그래서 그런가 고양이를 볼 때마다 상상을 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거 같다. '처음부터 길에서 살았을까', '어디 갔다가 오는 길인가', '밥은 먹고 다니나'
때로는 이렇게 쓸데없고 별거 없는 관심에 힐링이 된다. 무장해제가 되는 기분이랄까.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젖은지도 모르게 어느새 비를 맞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는 생각할 것이 많다. 만나는 여러 사람마다 나의 역할이 다르고 요구하는 것이 다르다. 나도 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 없다. 일종의 모드 전환이라고 할까. 그저 어느 정도 친절하고 어느 정도 웃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선량함으로 대한다. 내가 애써도 틀어지는 관계도 생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인사하기도 피하게 되는 애매한 관계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 모든 것들에 마음을 둘 수 없으니 애초에 선을 만든다.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으로.
현명한 방법이다. 필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마음 깊이 두었던 날 것의 좋은 마음의 흐름을 만날 때 그래도 잘 살고 있구나라며 나를 위로한다. 고양이에 진심을 느끼고 발견된 진심에 다시 나를 발견하고 그렇게 말이다. 보통의 하루는 별거 없다. 별거 없지만 하루는 그 별거로 채워지고 있다. 사진으로 찍고 기념하는 큰 사건들이 생각보다 나를 대표하지는 않더라. 그저 그런 하루를 잘 보내는 마음이 나를 더 나답게 하는 것, 글을 쓰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일은 고양이를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