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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Dec 21. 2022

상대적 시간에 관하여

기다리다 지친 당신에게 위로가 되기를

시간은 객관적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유명한 상대성 이론만 봐도 속도가 다른 모든 것들은 다른 시공간을 살아간다. 지금은 몇 시인가. 몇 시 몇 분 몇 초를 말하는 순간 그 시간은 지나간다. 또 내가 보고 있는 시계와 당신이 보고 있는 시계는 각각 오차를 가지고 있기에 서로 같은 시간을 보여주지 못한다. 휴대폰 시계나 위성 시계는 정확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통신사들이 가지고 있는 원자시계도 10조 분의 1초 정도의 오차를 가지고 있다고 하며, 오차 때문에 연 1회 정도 조정을 받는단다. 오차 조정의 기준이 되는 시계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있는 이터븀 원자시계인데 1억 년에 0.91초의 오차가 발생한다고 하니 완벽하고 객관적인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시간도 불명확한데, 우리는 주관적인 시간의 다름도 껴안고 살아야 한다. 주관적인 시간이란 무엇인가.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동일한 시간을 서로 다르게 체험할 수밖에 없음에서 발생하는 시간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1분이 아무 의미도 없는 너무나 짧은 시간일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자신에게 1분만 더 주어진다면 삶에서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거대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의 중요성뿐만이 아니다. 내가 보내고 있는 1시간이 당신이 보내고 있는 1시간과 동일하게 흘러간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시간을 지각하는 것은 우리의 뇌다. 뇌가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한 현상을 나의 뇌와 당신의 뇌는 다르게 체험한다. 내가 보는 초록색이 당신이 보는 초록색과 동일할 것을 확신하기 어려운 것처럼,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에 대한 지각, 감각은 모두 다를 것이다. 시간에 관한 이러한 지점들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아무런 영향도 없는 것처럼 우리는 살아갈 수도 있다. 대충 적당한 기준에 맞춰서, 너무나 미세한 다름까지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서 살아간다면 큰 문제가 없을지도.


그러나 당신은 감히 이것까지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타이밍이다. 신이 우리에게 내린 벌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의도 없는 사고 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타이밍이라는 것을 가진다. 누군가를 좋아하더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인연은 이루어지지 않고, 동일한 어떤 사건이 어느 사람에게는 축복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잘못된 타이밍으로 저주가 되기도 한다. 타이밍의 다른 면도 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 중 하나는 용서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당신이 용서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차이가 있다. 용기를 내야 할 때도 필요한 시간은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수 있는 시간도 모두 다르다. 우리는 서로 다른 타이밍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비극에 가깝다.


이 비극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 시간에 대해서. 나의 말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는데 소요되는 시간에 대해서. 당신은 내가 기다리는 동안 나타나지 않았고,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몇 번 참을성 없는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그렇지만 당신과 나의 시간은 같지 않으니, 같을 수 없으니 조금 더 기다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며 나는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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