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씨 Nov 28. 2022

이제 그들을 보내주려 한다

마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내 마음속에는 사람들이 산다. 누군가에게 마음에 품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힘이 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힘들 때나 괴로울 때 마음속 사람들을 떠올리며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에 자리를 내준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내게 고통을 준 사람들, 상처를 준 사람들, 치를 떨게 하고 학을 떼게 했던 사람들이다. 마음속 공간을 그들이 차지하면 차지할수록 나는 힘든 시기를 버틸 힘을 잃는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희망보다는 분노와 좌절, 불신과 실망이 나를 이뤄간다. 그리고 그것을 양분 삼아 그들은 점점 살을 찌워간다. 가끔은 내가 있을 자리조차도 밀어낼 정도가 된다. 나는 내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데, 내가 나이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비참해질 때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무한하지 않은데, 한계가 있는 그 마음의 공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주기보다는 미워하는 사람들이 차지하게 둔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내 공간에서 내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을 내 마음속에서 내보내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미워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을 욕하고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상상하고 그들이 멸망하기를 고대하고 저주하기 위해서는 내게 준 상처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 아픔이 선명하게 떠오를수록 그들을 향한 비난에는 힘이 들어간다. 동시에 마음이 곯아간다. 미운 것을 미워하기 위해서 억울하지만 나는 내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일부러 삶을 망칠 리 없기 때문이다. 병든 마음을 치유하기보다 더 악화시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것인가. 어째서 미소 짓게 하는 이들을 떠올리기보다 화나게 하는 이들을 기어코 상기시키고 마는가. 세를 받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내 자산을 거덜내면서까지 반갑지 않은 이들에게 내 집을 내어주고 있는 꼴이란. 그러나 그들을 집에 들인 건 바로 나이기도 하다.


그들을 붙들고 늘어져서 죽을 때까지 미워하는 것. 아니면 그들이 거할 공간을 비우고 사랑하는 이들이 자리하도록 하는 것. 진실로 원하는 것은 그중 무얼까. 나는 항변한다. 그들을 미워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들은 마땅하지 않은 이유로 상처를 줬고, 이기적이었고, 불의했으며 의도적으로 타인을 괴롭혔다. 맞다. 그들이 미움받는 것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이유가 되게 할 수는 없다. 나는 설득한다. 이제는 그들을 보내주자고. 용서해주자고.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자고. 나쁜 사람들이 많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의 죄수들을 풀어주며 그들의 안녕까지 빌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제 용서하겠으니 떠나라. 멀리. 그렇게 속으로 말하면서 바라본다. 어떤 이들의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내가 죄인으로 거주하고 있다면 부디 용서하시고 자유해지시기를.  

이전 08화 갑작스러운 울렁거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