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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Jan 06. 2021

갑작스러운 울렁거림

흐느적흐느적

가끔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 주위를 맴돌 때가 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예능에서 아주 웃긴 장면을 보고 깔깔거리다가도, 양치질을 하다가 흰 거품을 문 거울 속 나와 눈을 마주쳤을 때에도 떨쳐지지 않는. 그것이 과거의 일인 경우에는 대개 후회라는 감정이 따라붙는다. 스스로의 행동이 참 기특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졌던 기억들은 이상하게도 휘발성이 매우 강한 듯 떠나지 못하도록 쥐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를 벗어나 날아가버리고 기억도 나지 않는데.


에라 모르겠다. 머리와 가슴이 거슬러 오르려는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따라가 본다. 브레이크가 없던 버려진 자전거를 타고 50m는 이어진 내리막 길을 내려가다가 올라오는 승용차의 사이드 미러를 핸들로 쳐버렸다. 야. 너 뭐야? 왜 차를 치고 가니?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죄송해요. 초등학교 4학년 겨울, 큰 어머니가 동네 앞에서 건네주신 귤 한 봉지를 들고서 집에 가다가 공사를 하던 공터에서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을 만났다. 이유도 없이 아이들에게 둘러싸였고 겁에 질린 나는 귤이 가득 담긴 검은 봉투를 힘껏 휘둘러댔다. 아이들의 욕, 흙바닥을 뒹굴던 으깨진 귤들, 주황색 가로등 불 빛. 집에서 엄마는 큰 어머니가 준 것이 없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친구라는 단어를 쉬이 쓰지 못했는데... 누나라거나 형이라거나 마음 편하게 불러 본 적도 없었는데... 어느새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부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이제 없다. 그들도 나를 위한 마음속 여유 공간 같은 것은 갖고 살지 않을 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렇게 마음을 열었을까. 아니, 내가 뭐라고 마음을 열어달라는 요구를 쉽게 해 버렸던 걸까. 지금은 전화번호가 그대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연락이 끊겼다고 여기면서. 서른이 넘으면서 이런 변화란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고 받아들이면서. 젊은 우리, 모두 풋내를 풍기며 어른인 채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왜 아직도 울렁거리는 것인지. 소중했다 생각했으면서 소중하지 않아 하고 좋아했지만 더 이상은 좋아하지 않는 마음. 차라리 마음을 주지 말았다면. 마음을 받지 않았다면. 행복할까. 편할까. 떠오르는 기억에 흔들거리지 않을까.


그때, 옆에 있었을 때, 잘해줄걸. 아니면 그냥 모른 채로 살아갈걸.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내일 아침이 되면 아마 다시 마음 한 구석에 숨어버릴 테지. 마음이 무쇠로 만들어져 있다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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