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휘발
26년 3월이 끝나간다. 벌써 한 해의 1분기가 지나가버렸다. 첫째는 새싹반에서 열매반으로 반을 옮겼고, 앉기 시작했던 둘째는 어느새 걸음마를 시작하려 한다. 육아 휴직 중인 아내의 마음은 원치 않겠지만 조금씩 출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고, 바깥은 벌써 꽃이 피어나고 있다. 특별하길 바랐던 마흔은 이렇게 조금씩… 흘러간다.
이번 달부터 공유오피스에 나오기 시작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몇 달이나 아내와 둘째, 그리고 나는 좁은 집에서 같은 시공간을 살아냈다. 때 되면 수유를 해야 해서 외출이 어려운 아내가 나에게 잠깐 좀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라는 배려 섞인 말을 건네도, 한편에 무겁게 자리한 미안함으로 인해 그 시간과 자리를 지켰다. 그게 오히려 서로의 여유를 빼앗을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서로의 여유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부딪히는 상황이 늘었다. 우리는 환기를 위해 서로 필요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나의 필요는 독립된 공간에서 개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아침에 첫째 아이를 등원시키고, 공유오피스에 도착하여 유튜브를 켠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터졌으니 꼬박 한 달 동안 전쟁이 이어졌다. 지난 한 달간 가장 많이 찾아본 뉴스는 당연 ‘전쟁'뉴스였다. 흑백처리된 화면 속에서 미사일이 떨어지고 폭발이 일어났다. 뭐가 터졌구나 싶었다. 이란의 지도자들이 죽었다고 했다. 미국의 지도자는 단상에 올라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전쟁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나나 싶었다. 그러나 어느 날은 이란의 한 초등학교에 미사일이 떨어졌고, 아무 잘못이 없었을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란 여기저기에 폭격이 이어졌고, 이란은 주변 국가에 또다시 미사일을 날렸다. 뉴스 영상 속에서 검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흔들리는 화면만이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전쟁은 피와 눈물, 비명과 아비규환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폭등하는 유가와 치솟는 환율, 폭락하는 주가가 내게 와닿는 전쟁이었다. 운전을 많이 하지도 않으니 실제로 매일 체감되는 전쟁의 여파는 주식 계좌의 파란 기둥이었다. 조금 있는 자금으로 뭐라도 해볼까 했던 것이었다. 오르고 내리는 지수 속에서 내 마음도 함께 올랐다 내렸다. 조금씩 녹아내리는 계좌 평가액이 나의 살 같았다. 그래도 개중에 한 두 종목 정도는 붉은 기둥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위안을 삼았다.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곳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이번 전쟁을 통해서 전 세계 경제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란과 미국, 중동 지역과 패권을 꿈꾸는 여러 나라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려는 마음이 생겼을 것 같다. 그곳을 지나쳐야 하는 각 국의 유조선들 중 일부 유조선이 전쟁 중에 공격을 받았다. 유조선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시꺼먼 연기가 가득 피어올랐다. 내가 평생을 써도 다 쓸 수 없었을 원유가 불타고 공중으로 휘발되어 갔으리라.
유조선에서 타오르는 불기둥을 모니터 화면으로 바라보는데, 이상하게도 내 주식 계좌 속 유일한 붉은 기둥이 겹쳐 보였다. 뉴스 영상과 계좌 앱을 한 화면에서 바라보고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이상할 것도 없지만…
어쩌면 혼란스러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달 동안 매일 찾아봤던 전쟁 뉴스, 그리고 시시 때때로 확인했던 주식 계좌가 뒤섞여서 뭔가 서늘한 감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미 죽은 사람들과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죽게 될 사람들의 피와 폭발하는 화염. 침묵한 채 주식 계좌를 확인하는 나. 뭘까. 나란 사람은. 20대의 나로부터 마흔이 되어 버린 나는, 그동안 인간성이란 것을 얼마나 휘발시켜 버린 것일까.
적은 돈으로 시작했기에 엄청 큰 손실도 아닐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수익이 나면 가족들에게 맛있는 저녁 식사라도 사줄 요량이었다. “아빠, 이거 짱 맛있어!”하고 엄지 척을 보이는 첫째의 웃음 섞인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계좌를 확인하고 확인했던 마음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명령 따위 아무 의미 없다는 듯, 지난 한 달 동안 가벼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내가 유독 메마른 것일까. 유독 비인간적인 것일까.
할 일 없이 유튜브를 또 틀었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각 국의 지도자들이 위협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에너지 시설과 관계 시설을 타격할 것이라나 뭐라나. 뉴스를 보면서 나는 조금 뒤에 첫째가 하원을 하면 저녁 메뉴를 뭘로 준비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폭발하는 가스와 불타는 원유들은 다 어디로 휘발되어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