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

일상 에세이

by 포도씨


배설




작년에 한 살 터울의 남동생 내외가 둘째를 낳았다. 첫째 조카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으니 형아와 약 10살이나 나이 차이 나는 둘째 조카였다. 명절에 만나면 첫째 조카가 둘째를 안고 둥가둥가를 하고 있었는데, 꽤나 귀여운 모양이었다. 어느덧 한 해가 지나고, 돌잔치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요즘은 낯선 돌잔치지만, 가족이니 꼭 가야겠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돌잔치 장소로 향했다.




아뿔싸.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오랫동안 연을 끊고 살아왔던 사람이 그 자리에 와 있었다. 동생은 그 사람과 연락을 하고 있었고,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불렀던 것이다. 친가 친척 누구도 오지 않은 그 자리에, 그 사람을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그와 멀리 떨어져 자리를 잡았고, 곧 도착한 외가 친척들도 엄마 주변에 자리했다. 외가 친척 어른들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오랜 시간으로 흐릿해졌는지 그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혼자 있지 말고 엄마가 있는 그 자리로 오라고 권했다. 나는 같이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테이블로 내 식구들을 데리고 갔다.




곧 돌잔치가 시작되었고, 환호와 웃음, 박수 소리가 장 내를 가득 채워갔다. 전문 진행자가 능숙하게 행사를 이끌어갔고, 둘째 조카는 재수 씨의 바람대로 야구공을 쥐었다.

마음 한편에 불편함을 숨겨두고 웃으며 잔치에 자리를 채우고 있는데, 어디서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돌잔치라는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도, 목소리는 개인의 신세 한탄을 쏟아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또다시 그는 술을 마시고, 얼굴색이 바뀌어 있었다. 그는 뭐가 마음이 아프다느니, 친구 자식들은 이러는데 자기 자식들은 그러지 않는다는 둥 이상한 소리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엄마나 외가 식구들은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신세 한탄에 관심이 없었다. 아무도. 단 한 사람도. 그는 오랫동안 못 본 사이에 많이 늙어 있었지만, 사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잔치집에 와서 쏟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배설'과 같았다. 누구도 그의 배설물을 받아내고 싶지 않았다.




며칠이나 불쾌한 느낌이 불쑥 고개를 내밀곤 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창고 속 옛 물건들 위에 켜켜이 쌓인 두터운 먼지들이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공중에 어지럽게 산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숨 쉬는 것이 곤욕이었다. 무엇보다도 집안 어딘가에서 희미한 악취가 맡아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킁킁 거리며 냄새를 추적했지만 딱히 여기다 싶은 곳이 없었다.




내가 공유 오피스에 나가 시간을 보내기로 했듯, 아내는 운동을 다니기로 했었다. 그날 저녁은 아내가 운동을 다녀오는 날이었다. 아내는 9개월 된 둘째를 침대에 뉘이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나는 첫째 아이와 둘이 거실에서 무엇을 할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첫째는 만화를 보여달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만화를 보는 게 신이 났는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방에서 자고 있던 둘째는 그 소리에 울기 시작했고, 첫째는 내게 언제 틀어줄 거냐고 묻기 시작했다.




둘째는 20분이 넘도록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고, 첫째는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소리를 켜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정신이 사나워 나는 첫째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조용히 좀! 좀! 이게 뭐야. 동생이 계속 울잖아!”




금세 시무룩해지는 첫째를 보면서 더한 짜증이 몰려왔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악취.




나는 그가 잔칫집 테이블에 쏟아낸 배설물이 떠올랐다. 아무도 듣고 싶지 않고, 관심도 없는데 쏟아낸 그 배설물.




소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그저 쏟아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첫째는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었다. 설명해 주고 주의를 당부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방적 감정 배설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내 입에서 희미하게 똥냄새가 나고 있는 것 같았다.




30분쯤이 되자 둘째는 다시 잠이 들었고, 첫째는 조금 더 화면 가까이 앉아 만화를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가깝게 앉는 것이냐 물으니 잘 안 들려서 그랬다고 한다. 조금 더 만화의 소리를 켜주고, 잠시 내가 너무 힘들었음을 설명했다. 내 말이 끝나고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는 다시 만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 누워서 성난 감정을 추슬렀다. 나는 그와 별단 다르지 않은 걸까. 그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는데. 지난날의 상처들은 어쩔 수 없이 상처의 흔적을 만드는 걸까.




과거의 흔적들을 곧이 곧 대로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처의 기억을 통해 더 나은 삶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일 테다. 그보다, 상처 속에서 자란 지난날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는다. 그럴 수 있다. 분명.




화장실에 들어가 오랫동안 양치를 했다. 입으로 배설을 하는 사람이 되진 말아야지. 악취가 조금 희미해지는 듯싶었다.


Gemini_Generated_Image_ro1xh1ro1xh1ro1x.png


작가의 이전글휘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