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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Apr 19. 2021

사서는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인생에 대한 근황


 사서는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하면 거의 대부분 제게 직업이 ‘사서’냐고 물어보고는 합니다. 아마 일을 하기 전까지는 저라도 그렇게 물어볼 것 같습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사서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그러나 도서관이라는 곳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자료실 업무 이외에도 다양한 업무가 이뤄져야 합니다. 업무에 따라 사서로 일하는 사람과 사서가 아닌 직원들이 있지요. 사서들의 명함에는 ‘사서’라는 명칭이 쓰여있지만 저의 명함에는 ‘사원’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현재 비록 사서는 아니지만 도서관의 직원으로서 공공서비스를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일 하고 있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3년을 넘어 4년이 되어가는군요. 이제 도서관이 자리 잡은 언덕길과 동네 골목들이 마치 제가 사는 동네처럼 느껴지고는 합니다. 봄이 되어 피는 꽃들이 눈에 익고, 여름이 되면 거대한 산 모기들이(도서관 근처가 숲이거든요.) 날아다닐 것이라는 예상에 긴장을 하게 됩니다. 도서관 직원으로 여러 업무에 협조를 하고 지원을 하게 될 일이 있다 보니 어느 정도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흐름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업무 내용까지는 모르더라도 사서들이 어떤 일을 준비하고 진행하는지 대략적으로 알게 되더군요.

 처음 입사하게 되었을 때는 도서관 직원으로 제가 맡게 된 업무만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업무가 끝나면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데에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으니까요. 퇴근하면 글쓰기 강의를 수강하러 다니기도 했으니 제가 맡은 업무 외에 도서관 일에 대해 더 관심을 쏟기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러다 함께 입사했던 동기 선생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저 사서교육원을 다닐까 해요.”

 동기 선생님은 전산직으로 입사를 한 사람으로 저처럼 사서가 아니었던 분이었습니다. 전산 업무를 하면서 도서관과 도서관 업무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는 선생님은 퇴근하면 수업을 들으러 갔습니다. 덕분에 사서교육원을 통해 사서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쉬는 날에도 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동기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만을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열정은 옆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는지 ‘나도 일하면서 글을 열심히 써야지’ 다짐했습니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도서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 직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사서가 아닌 이상 제한된 부분의 업무 이상으로 무언가를 경험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요. 이전까지 ‘나는 집중할 무언가가 있으니까’하면서 넘기던 마음속에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게  계기로는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대략적으로는 사서 선생님들과 동질감과 동료의식을 느끼고 싶기도 했고, 글쓰기가 예상보다 성과를 내지 못한 부분도 있고, 이미 한번 전문직으로써의 진로를 포기했음으로 인해 앞으로의 진로가 걱정되기도 하고여러 고민과 상황 속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던  같습니다. 아내는 사서교육원을 다니겠다는  결정을 환영하고 지지해줬습니다. 아내가 동의하지 않았으면 다닐  없었을 것이므로 아내의 권유가 가장  요인이었다고도   있겠지요.

 직장을 다니면서 학업을 수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예상하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힘들고 피곤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마음을 굳게 다졌습니다. 더군다나 결혼한 지 5년이나 된 사람으로 휴일에는 양가의 각종 집안 대소사를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지요. 그럼에도 도서관 일을 더 잘하고 싶고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결국 양가 부모님에게 학업으로 인해 이전보다 방문이 줄어들 것이며 어쩌면 행사 참석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지요.

 올해 3월부터 아주아주 오랜만의 학부생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쉽지는 않네요. 얼마 전까지는 퇴근 후에 과제를 하느라 바빴고 이제 곧 중간고사를 맞이합니다. 도서관 일도 연차가 올라가면서 신경 쓸 일도 많아지고 상황에 따라 업무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지요. 바쁘고 정신없는 업무로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면 중간고사 생각에 마음이 어렵기도 합니다. 지금 땀 흘리는 만큼 결실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열심을 내려고 합니다.

 사실 저의 근황을 전하려고 시작한 글이지만 정말 정말 중요한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서교육원에 원서를 접수하고, 합격 결과를 기다리고, 입학을 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마음은 이미 먹었던 일이었지만, 지금 시기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시기가 정해져 있는 일은 아니지만요.

 아내가 임신을 한 후로 내 인생은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함께 병원을 가고,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고, 출산과 관련된 책을 읽고… 요즘 한창 입덧으로 고생하는 아내에게 어떻게 해줘야 도움이 될지 고민하며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삶이 계획한 것대로, 짜 맞춘 것처럼 딱 맞춰서 단계를 밟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더 실감하는 중입니다. 곧 이사도 앞두고 있는데, 여러 상황들이 닥쳐오는 중에도 그 시간을 잘 견디고 헤쳐나간다면 분명 무언가 소중한 의미와 결과가 남을 것이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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