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파견
하루 전만 해도 병원 일을 통해 의학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으면서도 어딘가 붕 떠있는 마음 탓에 퇴근 시간이 임박해 오면 빨리 병원을 뛰쳐나갈 생각만 가득하다. 일찍 나가봤자 운동하는 것과 저녁을 사들고 오는 게 전부이지만, 그래도 어딘가 병원 밖을 나가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긴 한다.
아무래도 인턴 때부터 이어져오던 바쁨이 한결 나아져서 그런 거라지만, 그 시간들을 너무 나만을 위해 보낸다는 생각이 들어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주변에 봉사할 수 있는 장소들을 찾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조건이 봉사시간 100시간을 채우는 것이었기에 대학생 때도 봉사활동을 찾았었고, 의대 다닐 때도, 공중보건의사 복무 기간에도 봉사를 다녔었다. 아무래도 어릴 적 기억들 때문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빠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서다. 그리고 솔직히 말이 봉사지 대부분은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만 시간을 내어서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어찌 되었건 그런 마음으로 이번에도 찾아보니 근처에 한 보육원이 있었다. 아무 연고가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대표원장님께서 영어를 가르쳐줄 선생님으로 학생들에게 연결을 시켜주셨다.
가벼운 영어 회화 교육을 대학생과 중학생 한 명씩 같이 진행하기로 했지만, 사실 아이들과 노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달라고 하셨고,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다가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편하게 아이들과 놀 궁리만 했다. 같이 가볼 만한 식당이나 편하게 놀 수 있는 곳. 근처에 실내 스카이 다이빙 장소도 있다고 해서 언젠간 데리고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이 의사라는 소개에 따라 괜히 멋지다는 듯 치켜세워주는 것을 듣고 갑자기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확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이 의사라는 직업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할 텐데, 그저 대단하다는 미디어 이야기들로 우러러 봐주는 것을 느꼈고, 그런 대상이 된 순간부터 과연 나의 행실이 이 아이들에게 본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치관이나 목표, 꿈같은 것들보다 하루를 살아가는 도덕적 행실을 보았을 때 그다지 본보기가 될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다. 특히나 최근 일을 시작하면서 더욱 느껴지는 사실이었다. 많이 바쁘다는 핑계로 온 정신은 해야 하는 일들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환자는 사람이 아닌 처리해야 하는 일로만 느끼고 있었다. 간호선생님과 보호자들도 혹여나 환자 치료에 방해가 되는 그런 행동들을 한다면 짜증부터 내던 것은 환자를 하루라도 더 빨리 퇴원시키지 못할 것 같아서 올라오는 마음들이었다.
물론 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짜증을 내거나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일이 거의 없겠지만, 내 일상에서 묻어 나오는 그런 온전치 않은 모습들은 반드시 느껴질 거라는 게 많이 신경 쓰였다.
한두 번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도 적어도 3년이라는 시간 속에 여러 번 만나서 좋은 영향을 끼칠 기회 역시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한 번씩이라도 잘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