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비내과/류마티스내과 파견
어린이날이라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빨간 날에 당직이라는 것은 그만큼 힘든 당직이라는 것. 주중에 휴일이 있다면, 그 전날 당직에서부터 생긴 일들을 그다음 날까지 이어가야 하고, 많은 병의원들이 닫기 때문에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더 몰려서 신환들이 꽤나 많아져서 당직 난이도가 증가한다. 그래도 작년에 비해 담당하는 환자가 절반으로 줄어서 이전같이 잠도 못 자고 쉴 새 없이 일을 하지는 않게 되었다. 게다가 1년간 배운 것이 아예 없진 않은 모양인 게, 병동 연락의 대부분을 쉽게 해결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보게 되었다.
당직 때 좋은 게 있다면 병원 근처에 있는 그릭요거트 가게에서 몇 그릇씩 포장해서 시켜 먹는 것이 그렇게나 맛있다는 것이다. 물론 언제든 시켜 먹을 수 있지만, 유독 당직 때 먹는 것이 괜히 더 맛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자주 시켜 먹게 되었고, 시간이 날 때 가게를 찾아가서 포장주문도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가게 주인분과 친해지게 되었다.
사실 작년 이맘때쯤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번호를 슬쩍 물어봤었지만,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그 이후로는 친해질 노력을 크게 하지 않았었다. 더해 타 병원 파견을 가서 몇 달을 못 보기도 했지만. 하지만 몇 달 만에 찾아갔을 때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었다. 작년을 언급하면서 말 끝을 흐리면서 무언가를 말하고 싶듯이 머뭇거리길래, 나는 대충 눈치를 보다 먼저 번호를 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오늘 연락이 왔을 때는, 병원 근처니까 잠시 내려와 달라고 했다. 강아지 산책할 겸, 조카랑 놀아줄 겸 근처까지 왔는데, 온 김에 과일을 좀 챙겨주고 싶어서 왔다고.
생각보다 너무 많은 과일을 챙겨주어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조카랑도 인사를 나누고 재밌게 이야기도 이어갔지만, 당직이었던지라 오래 놀지는 못했다.
솔직히 관계를 더 깊이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연락을 이어가던 중에, 작년부터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결혼 준비까지 다 마친 사람이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작년에 번호를 물어봤을 때에 시큰둥했던 것은, 당시에 남편 될 사람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었고, 웨딩 촬영까지 다 마쳤는데, 잘 안되었는지 헤어지게 되었다고.
사실 그렇다면 과거의 일일 뿐이니 새롭게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겠지만, 여전히 그 남자분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게 된 것도 어느 날 갑자기 프로필 사진이 웨딩 사진으로 바뀌었는데, 나는 당연 웨딩 광고 촬영 같은 것을 했나 보다 생각했는데, 과거의 인연과 찍었던 본인 웨딩 촬영이었던 것이었다. 물론 좋은 사람이었겠지만, 감정이 휘둘리게 되는 것을 전공의인 이 시점에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자연스레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