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3.21

외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일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의사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환자와 만담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꽤 받게 되는 것 같다.


어릴 때에는 몸도 마음도, 그 시야가 너무 작아서 삶의 반경을 작게만 살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동네 친구들이나 같은 반 아이들이 인생의 전부 같았고, 어떻게든 그 가운데 친구를 만들어 살아야 했다. 중학교를 넘어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가게 되면서 점차 생활 반경이 넓어지고, 만나는 사람들도 다양해져서 잘 맞지 않는 친구라 하면 어릴 때와는 다르게 안 보면 그만인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나만의 울타리를 쌓아 놓고 지내다가 다시금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 온 세상 모두를 맞이해야 하는 기분이 문득 들었다. 의사를 찾아온 환자를 떠나려거든 내가 일을 그만두는 방법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혹 환자를 안 보는 과를 선택했다면 모를까. 하지만 과를 급하게 정할 때 병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환자도 적당히 볼 수 있는 과를 고민하여 선택했기에 사실 내 온전한 책임이긴 하다.


그럼에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피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나 역시 들이받게 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두와 싸운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다툼을 피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싸울 일이 그리 많겠냐마는, 괜히 얼굴 붉힐일은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모두와 적당한 거리에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싸움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게 되고, 서로의 불평을 통해 맞춰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 것만 같다. 물론 다투고 질책하고, 쓴 말들을 하고 듣는 것이 많은 소모이긴 하지만, 그걸 견디게 된다면 그만큼 관계가 견고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말한다 해도, 사실 환자분들은 하루에 한두 번밖에 볼일이 없긴 하다. 자주 본다는 것은 일이 많다는 거고, 일이 많다는 것은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지라, 다툴 힘도 없는 경우가 많다.

작가의 이전글R1 -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