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3.24

외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친형이 오랜만에 장기간으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직장을 조금 일찍 그만두고, 다음 삶의 터전으로 나아가기 전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고 한다. 비록 코로나 여파로 2주간 집에서 격리되어야 했지만, 당장 당직을 서야 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부러웠다.


게다가 당직 중에 늘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하는데, 오늘은 MRI 검사를 따라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인턴 때나 하던 것을 여전히 하고 있는 게 불만이었지만, 해당 환자는 폐쇄공포증이 있어서 단기간 수면 마취가 필요하다고 하여 따라가게 되었다.


따라간다는 의미를 조금 더 풀어보자면, 먼저 병동에서 MRI 촬영실로 환자를 내리게 된다. 이때 간호사가 환자를 내리는 것이 아니고, 이동을 전담하는 직원분이 와서 환자를 내려준다. 간호사는 수면 마취에 필요한 약물, 산소통, 그리고 환자감시장치를 준비해 준다. 혹 환자가 산소를 필요로 하거나 상태가 좋지 않다면 의사가 병동에서부터 촬영실까지 같이 내려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촬영실로 직접 간다. 촬영 준비가 다 진행되면, 그때 수면 마취제를 투약하는데, 이 행위가 의사가 진행해야 하는 행위로 지정되어 있다. 수면마취는 수술할 때 진행하는 전신마취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있어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솔직히 내가 한국의 의료법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진 않지만, 해당 약의 투약은 의사가 해야 하지만, 이후 환자 관찰은 간호사가 진행해도 되는 부분이라 당직 중인 전담간호사가 동행하여 촬영 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게 된다. 단순하면서도 꽤나 많은 수고가 필요한 일이라 당직 중에 진행하는 것이 매우 번거롭지만, MRI 촬영 자체가 기본 3-40분 걸리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촬영을 진행하게 된다.


평소라면 약을 투약하고 바로 병동에 올라가서 밀린 일을 했겠지만, 해당 환자는 벌써 두 번이나 MRI를 시도하는 거라 아예 곁에 있어서 확실히 재운 다음 검사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에 전담간호사 선생님을 부르지도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거대한 철문 밖에 앉아서 모니터를 통해 활력징후를 보면서 검사가 끝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려 했지만, 환자분이 혹시라도 잠이 들지 않거나 중간에 깨면 무서울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속으로 너무나도 귀찮고 짜증이 밀려왔지만, 결국 귀마개를 이중으로 한 채로 검사실 안에 직접 들어가서 앉아 있기로 했다. 참고로 자석에 반응하는 모든 물건들은 밖에 두고 들어와야 해서 앉아 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풀린 눈을 깜빡거리며 생각에 잠겨있자니, 문득 인간이 기술적으로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아니었다면 몸속에 무엇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던 때로부터 이제는 각종 비침습적인 방법으로 해부를 하지 않아도 그 속을 알 수 있는 수많은 기술들이 발전을 한 것이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의술, 나날이 발전하는 문화와 문명. 그렇게 발전의 길을 위해,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해 힘들지만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연결이 되어 소소한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학교 다닐 적 열람실 지박령이라는 별명을 갖고 공부하던 시절에서부터 밤잠 잃어가며 환자를 보고 있는 지금까지. 조금씩 천천히. 더딘 모습일지라도 제법 괜찮은 의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하루를 더 버텨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 두려움으로 자리 잡은 MRI 검사도 눈을 감고 한숨 자고 나니 끝나있는 것처럼, 지금의 이 고생들도 잠깐의 순간으로 생각되는 날이 언젠간 오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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