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 - 08.02

정형외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평소에 계획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즉흥적으로 살려고 부단히 애를 쓰며 지냈다. 하지만 전공의가 되고 나서는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근무 시간이 들쭉날쭉 해서, 자연스레 되는대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3일 뒤에 휴가가 시작될 예정이었음에도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었다. 막연하게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 알래스카를 가면 좋겠다는 마음정도만.


그러다 문득 이제는 휴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알래스카행 표를 찾아 예매를 하려고 보니 여권이 만료되었다는 것을 그제야 확인하게 되었다. 당직 중에 확인한 사실이라 다음 날 퇴근하고 여권 신청을 해도 며칠은 소요될 것이었고, 긴급여권을 신청해도 미국을 오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정작 여행할 시간이 부족해서 영 떠나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뜬금없이 독도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마음 한가운데 늘 뜨겁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이 독도가 아니던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사실 괜한 의미라도 부여하고 싶어서 독도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는 김에 여기저기서 복무를 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 친구들을 만나면서 노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냅다 차를 끌고 출발을 한 것이었다.


횡성을 거쳐 정선에서 하룻밤. 그리고는 동해에 가서 배를 타고 울릉도 그리고 독도. 바로 돌아와서 영주에서 하루. 영주에서 부산, 부산에서 하루 머물고 대전.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여전히 여행의 과정 중에 있지만, 독도는 정말 당일치기로 갈 곳은 아니었다. 배에 타 있는 시간만 8시간이 넘었는데, 정작 독도에서는 20분 정도밖에 있지 못했다. 게다가 혼자 간 여행이어서 유쾌한 사진을 찍어줄 사람도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그나마 좋은 것을 말하자면, 날이 정말 좋았어서 무탈하게 독도를 다녀올 수 있었다. 날씨 변덕이 워낙 심해서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볼 수 있는 게 독도라는 말이 있다고.


역시 병원 밖의 삶은 언제나 행복한 것 같다. 신나서 이렇게까지 한 일을 나열하는 걸 보면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게 아닐지. 바라는 것은 일자리에서도 이 정도의 행복까진 아니어도, 잔잔한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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