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 - 10.20

신장내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갑자기 교수님이 전공의들을 부르시더니 시간을 정해서 점심 식사를 하자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편함이 있어서 괜히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남자 전공의들을 모아서 밥을 먹자고 하신지라 마땅한 핑계도 없어 끌려가는 심정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처음에는 그냥 밥을 사주고 싶어서 부르신 줄 알았는데, 내년 신규 전공의 지원자 모집을 잘 부탁한다는 요청을 하기 위함이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듣고 꽤나 놀랐던 것이, 교수님이 전공의에 대한 생각을 하나도 안 하고 계신 줄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신경을 써달라는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애초에 해당 교수님은 연구를 굉장히 많이 진행하고 있어서, 진료나 전공의 교육에 그만큼 시간을 쏟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알고 있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진료나 입원환자 관리에 대한 큰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았고, 전공의 처우에 대한 마음도 없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당장 급하게 모집을 하는 시기는 아니라서, 다들 알겠다는 말씀만 드리고 식사 자리를 마무리했다. 어차피 양쪽 병원에서 같이 진행하는 일이기에, 정해진 일정에 맞춰서 진행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해당 요청을 듣고는 처음으로 과연 내가 본원의 가정의학과 수련을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과연 내가 지금 속한 이 자리를 좋다고 생각하는지, 무엇이 좋은지, 알맞은 수련을 받고 있는지, 재미가 있는지, 미래에 대한 준비를 잘해주고 있는지. 아쉬움도 많고 감사한 것도 많은데, 다른 병원의 수련 모습을 모르다 보니 비교할 수 없어 쉽게 말할 수 있는 일도 아니긴 하다.


사주신 쌈밥에 걸맞은 모집 열정을 보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교수님이 전공의 처우를 위해 더 힘써주신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지 않을지. 아니 그렇게 된다면 추천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많이 지원하게 될 일이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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