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4.01

외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한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있었다. 토요일마다 당직을 서고, 일요일에 본가로 가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는 것이 반복되었고, 화요일도 고정 당직인 덕분에 단순한 패턴을 가지고 한 달을 보낼 수 있었다.


소소한 아쉬움을 한 가지 호소하자면 먹고 자고 일하고 있는 해당 의국은 일반 회의실에 가구를 들여놓은 곳이라서 샤워를 할 여건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 병동 끝에 당직실이 있는데, 그곳에는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공간 부족 사유로 1년 차들이 사용하기엔 애매한 장소였다. 그래서 매일 새벽 환자들도 사용하는 공용 샤워실에서 씻곤 했는데, 영 눈치가 보이는 순간들이었다. 동기는 수술방에 내려가서 샤워를 한다고 했는데, 새벽부터 일하기 바쁜데 수술방까지 내려가서 씻고 올라온다는 것은 부지런함의 증표와도 같게 느껴졌다.


또 의국원들 모두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가끔은 혼자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어서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결국 내가 자초한 일이긴 했지만, 주변에 괜찮은 원룸을 찾는 것도 어려웠고, 주변 시세에 맞는 가격으로 그 정도 방에서 살자니 병원이 훨씬 더 깔끔하기도 했다. 특히나 일 년 중에 약 4개월 정도는 다른 병원으로 파견근무를 가야 해서 돈 아낄 생각에 방을 찾는 것은 실질적으로 포기한 상태였다.


그래도 나름 뿌듯한 것 중 하나는 전공의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전공의가 영어로는 “resident”라고 하는데, 직역하자면 “상주하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이름값은 하고 있었다. 이 시간이 지니면 의학을 이렇게 가까이 배울 기회가 없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잘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생 때 한 호흡기내과 교수님께 해주신 이야기가 있었다. 전공의 시절 병원에서 먹고 자고, 환자들과 그렇게 가까이 있던 시간들이 가끔씩 그립기도 하다고. 그러다 전공의 파업 시기에 잠시나마 그때의 생활을 다시 하게 되어, 입원 환자들을 볼 때 옛 생각이 나서 좋은 점도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언제나 당시에는 힘들어서 괴로워하기만 하는 성격인데, 지나고 보면 좋은 추억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지금 이 순간도 같이 즐겨보는 노력을 해보고 싶다. 뭐라도 되겠지. 아니라면 무엇이든 다시 시도해 보자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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