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 - 12.09

호흡기내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56세 남환, 척수 손상으로 자가 호흡 기능을 잃어 기관절제술을 통한 가정용 호흡기계로 숨을 쉬고 있는 과거력이 있는 환자였다. 애초에 폐가 좋지 않던 분인데, 발열 증상 때문에 본원 응급실로 내원하여 시행한 검사상 폐렴이 확인된 상태였다. 오랜 기간 동안 기계호흡에 의존하고 있어서 재활의학과를 통해 호흡재활치료를 받고 있던지라 초기 협진은 재활의학과로 걸렸지만, 내과적 질환이라 하여 호흡기내과로 협진이 넘어온 것이었다.


퇴근 직전에 걸린 협진이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어찌하랴. 환자를 보러 응급실에 내려가서 간단한 문진을 마치고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교수님은 그저 입원시켜 달라는 한마디만 하시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여서 당연히 중환자실로 입실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중환자의학을 담당하고 계시는 호흡기내과 교수님께로 전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중환자실은 가득 차있었고, 적어도 하루 이틀은 대기를 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바로 교수님께 전화를 다시 드렸지만, 당연 받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때부터 환자 처방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진행해야 했다. 치료 계획이나 수액처방, 항생제의 종류 같은 것들은 그래도 그간 배워온 지식을 토대로 진행할 수 있었지만, 기계호흡 초기 설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이 없었다.


학생 때 배웠던 지식들과 중환자실을 그동안 들락날락하면서 주워들은 지식들을 토대로 설정을 해봤다. 호흡 모드는 일단 기존 설정 그대로 유지하면 되겠다 싶었던 것이, 환자의 의식은 멀쩡했고 특별히 숨이 차다고 호소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호흡수는 조금은 늘릴 수 있었겠지만 마찬가지로 현재 산소포화도나 이산화탄소 포화도에 크게 이상이 있지는 않아서 다음날까지 유지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호흡량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호기말 양압이 일반적인 수치인 5 수주 센티미터가 아닌 0으로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일하면서 단 한 번도 5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는데, 0이라는 숫자가 적힌 것을 보고는 오류인가 싶었다. 해당 설정은 폐포가 완전히 닫히지 않도록 일정 수준의 압력을 유지하여 무기폐를 방지하기 위함인데, 무기폐의 위험 부담이 없는 것일지. 그렇다고 건드렸다 폐포 손상이라도 밤사이 생기면 의료 과실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퇴근시간이 계속해서 멀어지는 것만 보고 있자니 밤을 새울 것만 같아서, 내가 알고 있는 그 모든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해당 상황에 대한 의학적 조언을 듣고자 사방으로 연락을 했다. 그나마 내과 수련 중인 친구가 상황을 듣더니 괜찮을 거라고 확인을 시켜준 것과, 재활의학과 전문의 친구가 해당 병원은 호흡 재활 치료의 일종으로 호기말 양압을 일부터 0으로 둔다는 것을 듣고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럼에도 차마 병원 밖으로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의사는 수련 과정 중에 필히 본인의 실수로 환자가 안 좋아지게 되는 것을 적어도 한 번은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그렇게 큰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는데,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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