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 - 02.10

내분비내과/류마티스내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내일이면 휴가가 시작된다. 전공의로서 보내는 마지막 휴가가 되겠다. 마지막 연차에는 시험공부를 하러 일정 기간을 떼어놔야 해서, 휴가를 그때 몰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휴가를 앞둔 전공의는 대부분 그 직전 날에 당직을 서는데, 아무래도 일주일 정도 병원을 비우기 때문에 마지막날과 복귀날에 당직을 서게 된다.


오늘은 제발 편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나름 주중 당직이기 때문에 쌓인 일이 많지 않아 나쁘지 않은 당직이 될 거라 내심 기대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새벽녘에 환자 수축기 혈압이 40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중환이 있다는 인계를 받은 적이 없어 놀란 마음에 병동으로 달려갔는데, 도착하니 담당 간호선생님이 환자의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전해주었다.


왜 당장 심정지 방송을 띄우고 심폐소생술을 진행하지 않았냐 다그치니, 보호자가 연명치료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였다.


원칙적으로 연명의료계획서가 작성되어 있지 않다면 모든 생명 유지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배웠다. 심폐소생술, 기관 삽관과 기계 호흡, 중환자실 입실, 필요시 투석이나 체외막산소요법까지도. 하지만 해당 환자는 타 병원에서 사전연명치료계획서를 이미 작성했다 하였고, 본원에 내원해서도 이미 구두로 연명치료는 거부한 것으로 동의가 되었다고.


연명치료계획서는 타원이라 해도 조회가 가능해야 하는데, 본원에서 서류가 확인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를 증빙할 자료도 전혀 없었다. 본원에서 서류 작성을 추가로 진행하지 않았던 것은, 애초에 환자가 급성으로 안 좋아져 사망할 것이 예상되는 상태도 아니라 그랬던 것이었다. 하지만 보호자는 정말 진심을 다해 환자에게 더 이상의 치료를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고 있었다. 따님도 병원에 오고 있던 상황으로, 20분 내로 서류를 완료할 수 있다고.


결국 보호자 한 분을 빠르게 내원할 것을 요청하고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은 채 기다렸다. 연명치료를 강행하는 것 역시도 옳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환자는 말기신질환으로 복막 투석을 받던 환자였다. 자택에 있을 때 고열과 구토 증상, 그리고 투석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내원했고, 세균성 복막염 의심하에 항생제 치료를 받고 있던 분이었다. 항생제 치료만으로 호전을 보이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악화 소견이었으니 충분히 혈압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전신 순환 부족으로 발생한 것이 아닐지, 승압제와 적절한 수액 치료로 혈압을 정상화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또 한편으로는 이미 전신 순환 상태가 좋지 않은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심장이 회복되어도 일상생활능력이 회복되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렇게 된다면 장기 입원 치료가 필요했을 것이고, 가족분들에게는 더 큰 짐을 지어주는 것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었다.


잠시의 고민을 하던 중, 추가 보호자분이 내원하여, 계획서를 완료시켰고, 몇 분 사이에 환자분의 활력징후가 전부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환자의 맥박과 호흡, 동공 반사, 심전도 결과를 토대로 사망 선고를 했다.


워낙 자주 사망하는 환자들을 보다 보니,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진중함이 무뎌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잠도 못 자고 피곤한 상황에 몽롱하게 사망선고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사실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하면 막중한 책임의 자리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 아마 대학 병원에서만 고민하게 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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