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 - 02.11

내분비내과/류마티스내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전공의로서 누리는 마지막 휴가는 친형이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에서 보내기로 했다. 어딘가 멀리 가고 싶었지만, 또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곳에 갈 계획은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때마침 필라델피아 미식축구 팀이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어 혹시 우승하면 도시가 엉망으로 되는 구경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 있었다.


코로나 여파가 완벽하게 정리된 것이 아니었는지, 도시는 어딘가 너저분하면서도 삭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큰 도시라서 그랬었겠지만, 동네 슈퍼는 품절된 상품들이 많아 빈 공간이 많았고, 생각보다 자주 들리는 총소리, 그리고 거리 곳곳마다 노숙자들이 건물에 기대어 벽화가 되어가는 양 앉아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유독 병원이 많은 도시였는지, 혹은 그저 큰 도시라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의사와 간호사들 전부 근무복을 입고 그렇게 시내를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위생은 어찌 생각하는 것인지. 허세일 수도 있겠고, 그저 편리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삭막한 도시에 어찌 보면 치료를 이어가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혼자 지으면서 걸음을 이어 나갔다.


사실 내가 그 어떤 자부심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아마 어릴 때부터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서 그런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을 꼭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여, 돈보다는 명예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지내왔던 것 같다. 의사라는 직업이 그런 마음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늘 그렇듯 기대와 현실은 괴리가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떠받들어 주기를 원한다는 것은 아니다. 근무복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각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아니고, 고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고개 한번 끄덕여주면서 격려해 주는 그 정도만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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