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학과 파견
3년 차가 되니 병원에서 요구하는 업무 강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집에 도착하면 여전히 피곤하고 배도 고픈 데다, 마냥 지쳐 침대에 누워만 있게 된다. 그간 일하면서 커피를 하루에도 두세 잔씩 마셔서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 위식도역류증이 조금 생기기도 했다. 배가 점차 나오는 것이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리 피곤해도 자기 전에 무조건 운동을 하러 나가기 시작했다.
어제도 침대에 한동안 누워 있다가 느지막하게 정신을 차리고 운동을 다녀왔다. 11시가 훌쩍 넘어 집에 돌아왔는데, 인기척이 유난히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라면 부모님께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겠지만, 산책이나 장례식장이라도 가셨나 보다 생각하고 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씻은 후에도 부모님께서 돌아오지 않으시면 연락을 하려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후부터 할머니께서 전화를 계속 받지 않으셔서 아버지는 신경 쓰이셨는지 어머니와 함께 할머니 댁에 다녀온 것이었다. 그 늦은 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는 본인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만 계셨다고. 그때만 해도 최근에 수면제를 바꿔 복용하기 시작하여, 실수로 약을 더 복용하여 몽롱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길래 찝찝한 기분만 간직한 채 잠들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께서 아침에 할머니를 다시 찾아뵈었는데,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계신다고 한 것이었다. 그제야 할머니에게 뇌경색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병원으로 가라고 말씀드렸다.
올해로 만 89세이신 할머니는 너무나도 정정하셔서 혼자 지내고 계셨었다. 장 보는 것과 요리하는 것, 집안 정리와 청소는 물론, 가끔씩 동네 목욕탕도 다녀오시기도 하셨다. 그렇다고 마냥 잘 지내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기어코 혼자 지내고 싶어 하셔서 몇 년 전부터 본가와 가까운 곳에 이사를 시켜 드렸다. 아버지는 그래도 매일 같이 전화를 하셨고, 주말마다 할머니를 뵈러 가시기도 하셨다. 아무래도 외동아들이다 보니 더 챙겨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신 것 같다.
그래도 그 연세에 잘 지내고 계셨으나, 하루는 복용하던 수면제가 그날따라 독하게 온 건지, 잠에 취한 채 넘어져 우측 손목을 크게 다치셨었다. 정형외과 병원에 바로 입원하여 수술을 받으셨고, 그 많은 나이에도 치료를 생각보다 잘 견디셨다. 그렇게 한 달간 입원 치료를 하시고 바로 지난 주말에 퇴원했는데, 이렇게 또 병원신세를 지게 된 것이었다.
아무래도 대학병원 응급실에 환자 의뢰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할머니의 과거력과 현재 병력을 기록해 놓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고혈압, 심방세동, 요추 추간판 탈출증, 최근에 시행한 손목 골절 수술 그리고 불면증. 약도 그에 맞춰 드시고 계셨으나, 오늘에서야 할머니가 입원 중에 멍이 너무 심하게 지속되어, 와파린 복용을 중단하고 계셨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할머니가 뇌경색이 왔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화장실이 지저분했다고 하신 것을 고려하면, 아마 변을 보던 중에 힘을 준 것이 유발 요인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와파린은 이전 세대에 원활하게 사용되던 약제이며, 혈류학적 불안정을 야기하는 동반 질환이 있을 때나 사용이 되는 약이다. 요즘은 직접 작용 경구용 항응고제라는 이름하에 새로운 항응고제제들이 사용되는데, 할머니는 병원을 다니시는 것을 워낙 싫어하셔서, 그저 평소에 복용하시는 약만 재처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장내과 진료를 그래도 보았더라면 약제 변경을 권고받았을 텐데.
응급실에서 할머니를 직접 뵈니, 우안 초점을 맞추지 못했고, 더불어 우측 편측 무시, 우측 안면 마비, 우측 팔 마비 증상과 무엇보다 실어증까지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응급의학과 선생님들과 더불어 신경과 선생님께서는 좌측 중뇌동맥 분지 어딘가가 막혔을 것으로 추정하였고, 시행한 두경부 컴퓨터 단층촬영에서 정확히 해당 부위의 음영 차이가 관찰되었다.
마지막 정상이었던 시간은 전날 오후 1시경이었고, 추측하건대 오후 4시부터 전화를 받지 않을 것으로 보아, 발생 이후 약 20시간 정도나 소요된 것으로 판단하여, 뇌동맥 내의 혈전용해술을 시행하면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 것으로 판단하여 일단은 입원하여 관찰할 것을 권고해 주셨다.
신경과 파견 중 뇌경색 부서로 파견을 받은 적이 있어, 뇌경색 환자들의 치료 계획이나 입퇴원 일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일이 가족한테 벌어지니,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뇌경색 환자들은 하루아침에 수많은 장애가 발생한다. 재활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렇게나 갑자기 들이닥친 일들을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대학병원 사정상 뇌졸중 집중치료실의 입원은 대부분 한주 내외이며, 그나마 재활의학과로 전과가 된다 해도 금방 장기 입원이 가능한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본원에서 입원을 권유받았으나, 타 병원에 급성기 기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다 하여, 정리되는 대로 어머니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가셨다. 계획하건대 일주일 정도 지켜보고, 추가 뇌경색 진행 여부가 없다면 예방 약제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재활치료를 시작할 계획을 세우셨던 것 같다. 아마 그때쯤에야 본원 재활의학과 의뢰를 할 계획을 세우신 것 같았다.
당장 물도 삼키지 못하시는 것을 확인하여, 비경구 용법으로 영양제를 맞으셔야 할 것인데, 언제까지나 주사로 맞는 것은 결코 좋지 않기에 후에는 비위관으로 밥을 드려야 할 것이다. 할머니 인지가 많이 떨어진 것도 아니기에, 불편하다면 매 순간 관을 잡아 뽑으려 할 것이 훤히 보여 괜히 더 마음이 아파왔다. 차라리 뇌 기능이 더 현저히 떨어졌다면 이런 고통을 겪을 일도 없으셨을 터인데.
솔직히 재활치료를 받아도 큰 호전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여 마음을 닫아놓았지만, 주변 재활의학과 친구들은 치료를 빠른 시일 내로 시작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기능이 돌아오기도 한다고 격려해 주었다. 할머니는 부르면 쳐다보시고, 엉거주춤 걷기도 하시고, 옷을 갈아입거나, 화장실로 부추겨 드리면 곧잘 따라오시기에 조금이라도 기능이 더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부터 말 못 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래도 매주 두 번씩 할머니에게 전화드리고, 시간이 될 때마다 찾아뵈었었는데, 전공의 수련을 시작하면서 전화도, 뵙는 것도 소홀해진 것이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졌다. 인지 기능이 떨어지시기 전에 꼭 안아드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더 했어야 하는데. 이제는 그런 말을 이해하실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병원에 일하는 의사가 눈물을 보여 좋을 것은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을 고이 욱여넣었다.
병원에 일하는 순간부터 할머니가 평안히 돌아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는데, 쉽지 않은 소원이었나 보다. 친할아버지는 두경부 암의 합병증으로 혈전이 생겨 뇌경색으로 약 11개월 동안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그때는 의대생도 아니었기에 마냥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았는데, 의사가 된 지금도 똑같이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는 입장이다.
인간의 제한된 시간, 강인하면서도 쉽게 병들고, 끝은 썩어 없어짐 밖에 없는 이 육신의 비극. 수많은 환자들에게 사망 선언을 하였음에도 슬픈 마음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매사에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다. 할머니가 이 글을 읽어보실 일은 없겠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꼭 남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