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학과 파견
최근에 종양내과에서 더 이상의 항암 치료는 환자에게 도움보다는 해가 될 것으로 판단하여, 치료 종결을 선언한 환자의 협진의뢰를 내주었다. 환자 면담을 하기 전에 보호자와 먼저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환자의 아내분 및 따님과 면담을 먼저 하게 되었다.
해당 모녀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자 아버지 되는 환자분이 약 한 달 전에 가족들에게 본인의 암소식을 알렸고,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환자 본인은 먼저 암 전이 사실까지 들은지라, 본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에 대해 마음 정리가 되어 있었지만, 가족들은 마음은 전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어떤 치료라도 받게 하려고 다른 병원들을 그렇게 알아보려 했던 것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보호자분들을 불러놓고 환자에게 더 이상의 무의미한 치료를 위해 병원을 옮겨 다니는 것은 환자를 지치게 하는 것이고, 얼마 남지 않은 환자의 생명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하셨다. 오히려 하루빨리 온 가족이 모여 이야기 나누며, 남은 시간을 귀히 보낼 것을 말씀하셨다. 감사히도 그 가정은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 정리까지 잘하여 임종 면회까지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얼마뒤에 환자분은 평안히 돌아가셨다.
원칙적으로 환자의 의료 상태는 환자 고유의 정보라서, 본인에게 직접 말해야 하고,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조차 허락을 받고 알려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여전히 가족 중심적이며, 정이라는 이름 하에 많은 것들이 넘어가지기 때문에, 환자보다는 가족들에게 소식을 먼저 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래도 환자가 나이가 많거나, 아주 젊은 말기암 환자인 경우에 보호자의 역할이 더욱 커지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수련을 받으면서 한 가지 배우고 있는 것이 있다면, 완화의료뿐만 아니라, 사실상 모든 질환에 있어서 환자 본인에게 사실을 제대로 전달해야 하며, 가족 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당장은 좋지 않은 소식에 충격을 받을 수 있겠지만, 결국은 남은 시간을 그만큼 귀하게 보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고, 가족들 역시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그 기회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죽기 직전에라도 이러한 소식을 전하는 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 보호자분들이 종종 있다. 그럼에도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은, 무슨 일이든 결국 본인이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의사들이 지키려고 하는 인간의 존엄성 중 하나의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