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3 - 03.29

가정의학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비행 착각. 비행 중인 조종사가 실제 항공기의 위치나 자세, 정확한 기체 상태를 착각하게 되는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일종의 공간 방향 감각 상실 현상을 뜻한다고 한다. 심할 경우 지면과의 거리 착오로 그대로 추락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갑자기 뜬금없는 비행 이야기가 웬 말일까 싶지만, 가정의학과로 입원한 어느 젊은 여환자의 회진을 끝마치고 교수님께서 전공의들에게 전해준 이야기였다.


30대 후반의 여환.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과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일만 하다 보니 점차 식욕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식욕이 줄어드는 만큼 그나마 식사를 할 때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더욱 식욕이 감소했고,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 체중은 점차 줄어들기만 했다.


실제로 상장간막동맥증후군이라고 하여, 십이지장 제3부위가 복부대동맥과 상장간막동맥 사이에서 압박되어 생기는 일련의 복부 증상들로, 소화불량, 식후 구염감, 상복부 통증 등 식사에 대한 장애를 계속해서 유발하는 질환이 존재한다. 이는 마른 체형이나 극심한 체중 감소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데, 해당 환자에게 강력하게 의심이 되는 상황이었다.


더하여 식사뿐만 아니라 물조차도 잘 마시지 않았기에, 유효혈장량이 크게 줄어들어서 콩팥 기능까지도 망가지기 시작하여, 현재 중등도 만성 콩팥병 진단이 가능한 상태까지 악화되었다.


아무래도 정신적인 이유도 다분했기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수차례 의뢰했지만, 환자 본인이 그 모든 정신과 진료를 거부하여 이에 대한 온전한 치료는커녕 평가조차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금번은 그나마 본인이 조금 힘들긴 했었는지, 입원을 하여 영양 수액이라도 맞는 것에 동의를 하였지만, 며칠이 지나 상태에 조금 호전을 보이기 시작해서 그런지, 바로 또 퇴원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교수님께서는 본인이 보고 느끼는 것을 의지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수치들, 외부의 요인들을 통해서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내가 환자를 잘 설득해서 수액도 조금 더 맞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잘 받아서 회복의 길로 점차 나아갔다고 말하고 싶지만, 환자는 그렇게 또 퇴원하고 말았다. 교수님께서는 이번이 마지막 입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남기셨다. 외래도 더 이상 찾아오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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