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4.31

외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인턴 때부터 느끼기 시작한 건데, 병원은 칭찬에 참 궁색한 것 같다. 아무래도 직업적인 면에서 오는 것이 크겠지만, 익숙해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원에 오면 회복될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좋아지지 않는 것에 분노를 표한다. 그럴 것인 게 평소에 건강하다 하루아침에 죽음의 문턱 앞에 있게 되는 그 현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한 것에는 칭찬을, 잘 못한 것에는 훈계를 들을 걸 예상하지만, 그게 참 어려운 일인가 보다. 솔직히 퇴원하는 환자 보호자 중에 병동을 나가면서 고맙다고 하는 사람들은 손꼽을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나라도 더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실수는 누구나 하기 마련인데, 그런 상황에서 짜증 섞인 말을 듣는 것과 부드러운 격려를 듣는 것이 차후 능률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격려에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이게 또 막상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다른 누군가가 실수를 해서 그 책임과 뒷수습이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니 선한 말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일줄 몰랐다. 예쁜 말을 하는 것도 굉장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언젠간 외과 교수님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외과 파견이 끝나기 전에 일차 진료의로서 외과적 지식 중에 꼭 알고 가야 할 것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먼저는 급성 복증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라고 해주셨다. 급성 복증이라 하면 복강 내 갑자기 발생하는 통증으로 흔히 긴급한 외과적 처치를 필요로 하는 질환들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장천공, 급성 담낭염, 혹은 충수돌기 파열로 인한 범복막염 등의 질환들의 특별한 증상들을 숙지해 두면 빠르게 판단하고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 보낼 수 있으니 환자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을 거라고 해주셨다.


하지만 그 이후에 해준 말씀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내가 걱정이 많아 보이는데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멋진 전공의니 그대로 계속 지내다 보면 좋은 의사가 되어 있을 거라고 격려해 주셨다. 워낙 유쾌하신 교수님이라 나 역시 웃으면서 감사함을 전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격려가 참으로 마음에 담긴 것을 느꼈다.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언제부턴가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그런 작은 격려의 말들이 이렇게나 힘이 되는 걸 생각하면, 오그라든다 할지라도 한두 번쯤은 억지로라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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