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파견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당직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신환이 몰려왔다. 첫 환자 처방을 내기도 전에 ‘코드 블루’가 터져서 한참을 다녀오고 다시 자리에 앉으니 당직 교수님이 왜 아직까지 처방을 내지 않았냐며 꾸짖었다. 억울했지만 전공의에게 억울함은 존재해선 안 된다는 친구의 말이 기억나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실 그 순간에 제일 원망스러운 건 인계를 해주었던 동기였다.
근무 시작 전부터 각기 해당과에 대한 인계를 알아서 받아야 한다. 업무가 막중한데 병원일이 끊김 없이 진행되어야 해서 미리 챙기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환자들. 금번 인계를 해준 전공의는 한 살 어린 동기였는데, 그 친구가 3월부터 소아과였고 5월부터 외과 파견 예정이라 서로 인계를 해주었다. 인턴 면접 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 바로 옆에 앉아 면접을 본 사람이었다. 면접자 교수님들 중 한 분이 그 친구의 나이가 많은 것을 지적하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나이가 더 많은 나는 당연히 인턴 채용에 떨어질 거라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감사하게 둘 다 인턴에 합격하고 우여곡절 끝에 같이 가정의학과를 오게 된 것이었다. 둘 다 1차 희망과는 아니었지만.
그런 첫인상을 뒤로, 차츰 알게 되기 시작했을 때에는 마냥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놀기 좋아하고 게임도 좋아하는 그런 사람. 말도 편하게 할 줄 알면서도 지킬 것은 지키는, 또 생각보다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친해져 방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인계를 받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내용은, “그냥 하면 돼”였다. 소아의 처방이나 기록, 흔히 받을 수 있는 당직 노티들 전부 그냥 하면 될 정도로 쉬운 일들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냥 해서 될 일들이 전혀 없었다. 일단 처음으로 내야 하는 처방부터 막혔었는데, 성인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하루에 3번씩 혈압을 재는 것도 소아에선 몇 번씩 재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기에 처방 자체가 계속 밀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코드 블루 알림이 병원 전체에 울리니, 하던 것을 던져놓고 심폐소생술을 하러 달려갔다. 중환자실까지 환자 인계를 도운 후에 돌아오니, 결국 한 환아는 병동에 입실한 지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기본 처방이나 기록 하나 없었기에 교수님이 많이 당황하셨을 것도 이해가 되었다. 물론 기분도 좋지 않아 보였다.
많이 억울했지만, 그 어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이 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 따위는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해서 말을 아꼈다. 사실 너무 억울하면서도 당황해서 아무 말을 못 한 것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솔직히 많이 혼나지도 않았는데 그간 쌓인 감정들이 같이 터지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게다가 인계를 해준 동기한테는 분노에 가까운 마음이 자리 잡히기도 했다. 사실 동기는 당직 첫날에 다른 당직 교수님과 일했을 것이고 이렇게까지 일이 많이 몰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 보았지만, 마음이 영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본인은 그냥 하면 되는 수준의 일들이었지만, 나에게는 하나씩 알려주지 않으면 전혀 모르는 일들 투성이었다. 문득 그 친구와 내가 단순히 지적 수준이 달라서 생긴 불상사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한 명씩 천천히 입원하면 안 됐던 건지, 코드블루가 꼭 그 시간에 발생했어야 했는지, 교수님은 친절하게 알려주셨으면 안 되는 건지, 친구도 세밀하게 인계를 해주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교수님이 입원한 신환들에 대한 처방을 다 내주고 가시면서 기록만 작성해 달라 했다. 덕분에 그 이후로 온 환아들의 처방은 이미 있는 처방들을 토대로 하나씩 쌓아나갔다.
마음이 너무 지쳐서 잠시 소파에 눈을 감고 떠보니 몇 시간이 지나있다. 감사하게 아무 연락도 없었고, 그저 고요한 새벽녘이었다. 아침이 되어 병원 밖으로 발걸음을 어김없이 옮기겠지만, 이번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