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5.05

소아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공교롭게 어린이날 소아과 파견이라 괜히 마음이 더 쓰였다. 건강하게 뛰놀아야 할 때인데 병원에 입원 중이라니.


감사하게 이러한 좋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소아과 근무 첫날 이후로 정말 그만둘까 생각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좀 괜찮아졌다. 게다가 동기에게 있었던 일들을 쏟아내니 그가 미안했는지 머쓱한 표정을 보이고 다음부터는 자세히 인계해 주겠다고 했다. 일이 낯설어서 두배로 고된 것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인턴 때부터 매달 새로운 과에 대해 배우고 일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이어지다 보니 예민해졌나 보다. 그날 이후로 많이 안정되고, 어려움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단 외과와는 전혀 다른 결의 업무라 긴장을 많이 했다. 특히 인턴 때 겪었던 소아과 선생님들은 놀라울 정도로 예민하고 까칠한 부분이 있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담이지만 인턴 때 소아신경과 파견 근무를 하는 동안 말도 안 되는 환자 명단 출력 업무를 해야 했는데, 토씨 하나 틀렸다고 어찌나 구박을 받았는지. 진절머리가 났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곳은 전공의가 없는 대신 입원의학과 교수님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임상과 교수님들이 외래 업무와 환아 입원 여부를 결정하게 되고, 입원의학과 교수님들이 환자의 입퇴원을 관리하게 된다. 물론 최종 결정권은 임상과 교수님들께 있지만, 권한 위임은 각자 정하기 때문에 병동이 되려 역동적이다. 가끔은 삐걱거릴 때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환아의 치료에 있어서 두 명의 전문의가 전담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일이 현저히 적다. 덕분에 윗년차 없이 교수님과 독단하기에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덜한 편이다.


그럼에도 현재 파견 시스템이 온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일단 임상과 교수님들은 본인 외래와 응급실 당직 중에 신환 입원을 시키게 된다. 그래서 입원 환자가 넘칠 때도 있는 반면, 아예 없을 때도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임상과 교수님을 따라 회진을 돌면서 일을 배우는 것은 업무가 일정치 않게 될 것으로 해당 안건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입원의학과 교수님들은 두 명씩 출근하여 입원 환자를 나눠 보게 되는데, 한 명의 입원의학과 교수님을 따라 회진을 돌게 되면 입원해 있는 환아 절반을 보게 되어 되려 업무 과중으로 판단되어 거절되었다. 특히 이 병원은 대학병원임에도 아직은 2차 병원 수준의 환아들을 받고 있어 병실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환자가 많다. 결국 과장님이 내놓은 결론은 당직 업무를 도맡으면서 소아 질병들에 대해 배우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당직 때 신환을 받고, 구환의 관리를 도맡아서 하고 있는데, 이러한 근무 형태로는 다양한 소아 질병들을 배우긴 쉽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소아 환자를 보게 될 일이 많지 않아서, 소아과 파견 업무가 적은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다른 전공의는 거의 없다. 특히 누군가가 해당과에 관심이 많다 해도 업무에 대한 변동 사항을 요청할 때 모두의 동의를 받기란 불가능하여, 늘 최소한의 필수 업무가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더 배우고 싶다면 알아서 일을 찾는 수밖에.


나 역시 아무리 소아 질병에 관심이 많다 해도 일이 막중해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저 제일 아쉬운 것은 당직 이후에 내가 온전히 책임을 다해 보는 환자가 없기 때문에, 환아 초진을 볼지언정 회복하여 나아지는 것을 보게 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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