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5.07

소아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의대에서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적어도 나는 친하다고 생각했었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모두를 대하며, 노래를 너무나도 잘 부르던 사람이었다. 덩치가 조금 있는 편인데, 항상 즐거워 보이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그를 “바커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비록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만큼 그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그 친구가 같이 어디를 좀 가달라고 요청을 했다. 기타 하나를 가지고 20분 정도 걸어간 곳은 다름 아닌 유아 복지센터였다. 해당 센터에서는 몇 달에 한 번씩 아이들의 생일을 몰아서 축하해 주는데, 그날 기타와 함께 즐겁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싶어서 봉사를 이어갔던 것이었다. 그 친구 덕분에 나 역시 매주 찾아가게 되어 4년 내내 아이들 학습지 교육을 해주면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같은 학년은 아니어서 자주 볼 일은 없었고, 솔직히 따로 밥을 먹은 기억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너무나도 반갑게 그 친구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가끔씩 내가 부럽다고 말해주었다. 너무 부러워서 질투가 날 때도 있다고. 솔직히 무엇 하나 내가 더 잘난 것이 없다고만 생각해서 그냥 하는 말이라고 여기고 그가 졸업해서 떠날 때까지 잘 가라고 축하도 해주었다.


각자의 삶이 이어지는 동안, 가끔씩 안부를 물으면서 지내왔는데, 어느 날 보니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도 못하고 지내서인지, 내가 먼저 그 친구에게 축하한다며 연락을 보냈다. 그러자 즉시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으며, 그간 있었던 일들과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전해주었다.


한 선교사님에게 좋은 사람이라며 소개를 받았고, 그렇게 몇 년간 교제를 이어왔으며, 이윽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그러면서 해준 이야기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정말 눈치도 못 챘지만, 그 친구는 내가 정말 미울 때가 있을 만큼 질투가 나서 연락을 잘 안 하게 되었다고. 물론 오래전 일들이며, 이제는 자신의 짝을 만나 너무나도 행복하게 앞으로의 인생을 더 나아갈 때라 서로 축하의 말들만 전했다. 나에게는 여전히 좋은 친구이고, 사실 그 친구가 나에게 단 한 번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서 오히려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점차 들기 시작한 생각인데, 내가 놀라울 정도로 주변에 무지할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내가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 어떤 능력과 어떤 마음이 있는지.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 하나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나라는 사람 외에는 관심조차 없던 건지.


피곤하고 불편한 관계들이 이어질 것 같으면, 완만하게 지내겠다는 이름하에 그냥 멀어진 것은 아닐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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