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5.10

소아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국내 가정의학과 수련 병원의 순위를 굳이 따진다면 두 병원이 늘 상위권에 있다고 한다. 한 곳은 외래 진료 교육에 힘이 실려 있고, 다른 한 곳은 입원환자 중심이라고.


개인적으로 가정의학과는 1차 진료에 중점을 많이 두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래 진료를 더 경험할 수 있는 수련 환경이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수련 환경에 아쉬움이 있다 하여 손 놓고 있는 성격은 아닌지라, 외과 때부터 인계받은 것처럼 소아과에서도 외래 진료 참관을 시작했다. 필수는 아니지만 기회를 제공해 준 교수님들에 대한 예의라고도 생각해서 모든 교수님들의 외래 진료를 참관하려 한다.


먼저 소아혈액종양과 교수님 외래 진료 참관을 했지만, 환자 자체가 많지 않아 혈액 질환 개요 강의를 일대일로 듣게 되었다. 항상 외우기 힘들던 응고질환 원인 인자를 쉽게 외우는 법을 배웠는데, 혈액응고 과정의 공통 경로에 포함되는 응고 인자들은 미국 지폐 단위로 외우면 쉽다고 한다. 1불, 2불, 5불 그리고 10불.


하지만 결국 환자를 많이 보면서 배워야 하는 질환들인데, 소아혈액종양 질환들은 희귀하여 대부분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교수님 외래에는 환자들이 거의 없었고, 특히나 은퇴를 앞두고 계신 노교수님이셔서 적극적인 진료를 보이지는 않으신 것 같이 느껴졌다. 나 역시 내가 언제 이런 환자들을 보겠나 하는 마음으로 더 참관을 하진 않을 것 같다.


반면에 소아내분비과는 현 병원 소아과를 먹여 살릴 정도로 환자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교수님이 전공의들에게 매주 하루씩 환자 초진을 봐달라고 하신 정도이다. 물론 젊은 교수님이셔서 그만큼의 열정으로 일을 하고 계신 것도 있다. 하지만 소아내분비과는 정말 내분비적 질환이 의심되어 오는 환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장 클리닉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아이들이다. 다들 자녀들의 키가 컸으면 하는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다.


언젠간 봤던 만화가 딱 이런 이야기를 다뤘었다. 계급이 키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를 표현했다. 키가 크면 더 높은 직위나 고소득의 직장을 갖게 되고, 주변의 친절함과 더불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키가 작으면 항상 무시받고 지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한국이 그렇게 키에 따라 받는 대우가 극명하게 다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키가 큰 사람을 모두가 더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은 보이는 것에 더 취중 되는 모습인가 생각하게 된다.


성장 인자를 주입하는 주사가 있고, 가격도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이 주사는 암 발생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성장 추세가 하위권인 아이들에게는 성장 부진에 대한 치료제로 굉장히 효과적이지만, 정상 범주의 성장을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더 높아서 적극적으로 권고하지 않는다. 적어도 대학병원에서는 돈을 벌어야 하는 부담이 없기에 안전을 더 추구하기 마련이다. 가정의학과에서도 이런 진료를 보는 분들이 몇 분 계시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주기적인 검사가 필요한 치료이기 때문에, 소아내분비과 교수님께서는 이런 진료를 보는 것을 추천하시지 않는다.


나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기 때문에 체감되지는 않지만, 내 자식이 3-4센티라도 더 클 가능성이 있다면,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위험 부담이 없는 선에서는 적극적으로 주사를 맞게 할 것 같긴 하다. 어릴 때 키가 크지 않다고 하여 차인 적이 몇 번 있어서 내 자식은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솔직히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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