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파견
정원은 10명이었지만, 올해 예정된 전공의는 7명이었다고 한다. 추가 모집으로 나를 포함한 3명의 남자 전공의들이 지원을 하게 되어 기적적으로 10명이 채워졌던 것이었다고. 타과로 파견을 가는 입장인 가정의학과인지라 파견 스케줄의 원활한 유지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전공의들이 정원에 맞게 채워져야 했다. 그렇게 무사히 스케줄이 유지되나 싶었지만, 나이가 좀 있는 형님 한분이 전공의 수련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3-4월은 다른 병원 파견 근무여서 친해지지 못했었지만, 5월부터는 같은 병원이라 자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주칠 일이 없었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떠난다고 하여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고, 가정의학과를 여전히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지라 붙잡지 못했다. 아니, 붙잡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래도 그만 두기로 한 이유를 물어보니, 3-4월 산부인과 파견동안 한 교수가 무척이나 괴롭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해당 과에 속한 전공의처럼 모든 일을 맡기고 알려주는 것이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타과 전공의인데도 불구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설사 교수라고 해도. 안타까운 것이 해당 교수는 이미 산부인과 내에서도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다른 병원의 교수였으나, 수술 실력이 썩 좋지 않아 전임교원으로 남지 못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본 병원에서는 당직의 입장으로 고용된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전공의를 함부로 대한다는 평판이 가득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전공의는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인 것도 잘 알고 있었고, 강인한 마음의 소유자인 형이었지만, 그만 둘 생각을 굳힌 것은 본인이 원했던 각종 술기들을 배울 기회가 앞으로도 많지 않을 것을 들어서라고 해주었다.
수련을 받기 전에는 응급실에서 전임의로 오랫동안 일해 왔다고 했다. 밤샘 근무가 힘든 것도 있었지만, 내시경이나 초음파 등 각종 술기들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가정의학과 수련을 선택하여 온 것이었다고. 하지만 본 병원의 수련 과정을 경험해 보니, 3년 차가 되어도 원하는 술기들을 전담하여 배울 기회가 없었고, 오히려 주치의를 병행하면서 술기들을 어깨 너머 배울 기회정도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수련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었다.
아마 조금 쉰 이후에 다시 응급실을 찾아 전임의로 일을 이어갈 것 같다고 하며 짐을 정리하고 형님은 유유히 떠나갔다. 고생 가운데 동거동락한 사이까지는 아니라 마음이 많이 쓰이지는 않았어도, 어딘가 씁쓸한 기운이 오래 지속되었다. 나 역시 그만두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고 있어서 괜히 더 심란해지는 것 같다. 더 나은 길이 있는데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두려움 때문에 책임이라는 이름하에 가던 길을 가려는 것인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없어서 뛰어들지 못하는 것이라면, 원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맞는지, 당장에 뛰쳐나가 내 꿈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인지. 꿈을 좇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나이는 지난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