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5.23

소아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친형이 한국에 몇 달간 머무를 예정이라 될 때마다 본가로 돌아가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형은 인기 많은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은 압구정 로데오에 유명한 카페가 있다고 해서 따라갔다. 원래는 향수를 파는 가게인데 카페 및 바를 운영하고 있고, 인기 있는 메뉴가 우삼겹 김치볶음밥이라고 한다. 어딘가 의아했지만 형이랑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의미를 두고 가만히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날씨는 점차 더워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한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 밝은 날, 해맑게 웃는 수많은 사람들. 많은 인파를 몇 년 전부터 점차 힘들어하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군중 속에 깊이 들어가 있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한동안 나이가 지긋이 드신 아픈 사람들만 보다가 젊고 건강한 사람들 속에 있다 보니 마음의 짐이 내려놓아지는 것만 같았다. 온 세상 아픈 사람들이 나의 책임도 아니었고, 그 생명 역시도 내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는 속삭임을 들은 느낌. 괜히 짊어지고 있던 생명이라는 무게를 고이 내려놓고 보니, 마음속에 있던 원망들도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주말도 없이 화창한 날에도 쓴소리를 들어가며 병원 울타리를 지키고 있던 내 모습이 많이 억울했었나 보다. 물론 내가 선택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힘들면 그만둬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줄 서 있다, 감사함을 모른다, 나중에 편해지지 않느냐 등 수많은 이야기들은 이미 많이 들어왔다. 알고 있다, 축복이라는 것을. 하지만 내 감정을 온전히 조절하는 것이 영 쉽지는 않았다.


그런 원망이 어디서 생긴 것인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이런 감정을 두고 깊은 묵상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늘만큼은 비취는 따스한 햇살과 살살 불어오는 산뜻한 봄바람을 누리고 싶었다. 비록 줄을 서고 자리에 앉아 밥이 나오는 데까지 꼬박 한 시간이 걸렸지만, 신기하게도 향수집에서 하는 볶음밥이 꽤나 맛있었다. 아마 자연과 자유함에 취해 맛이 더해진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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