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파견
미국에서부터 알던 친구가 한국에 잠시 방문한다고 연락이 와서 보게 되었다. 한국인이지만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살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백인 친구를 만나 결혼도 하여 아이도 낳고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친구다. 미국에서 약사로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잠시 휴가를 내고 남편은 미국에 남겨둔 채 아이와 함께 한국에 들어온 거라 어디든 아이와 함께 가야 해서 아예 키즈 카페에서 만나게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가본 키즈 카페였는데, 이렇게나 거대하고 재밌는 시설이 존재하는지 전혀 몰랐었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대기를 하던 부모들이 있었고,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놀라고 아이들을 풀어놓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는 기분도 들었다.
나도 뛰어놀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체통을 지키고 친구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동안의 나날들, 남편을 만난 순간, 임신과 출산, 지금의 일을 하게 되기까지의 노력들. 아무래도 약사이다 보니 미국의 의료 상태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내가 미국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미국은 의료 보험이 민영화되어 자본주의의 막대한 영향력 앞에 의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최고 수준의 치료를 접할 수 있는 반면에 보험을 등록하지 못한 사람들은 병원 근처에도 못 가는 안타까움이 존재한다. 그 모든 게 의료 보험 회사, 의료 물품 회사 그리고 병원 사이에 막대한 비즈니스가 오가게 돼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처방이나 시술, 병원에서 의사가 행하는 그 모든 것들이 엄청난 가격에 책정되고, 이에 따라 병원 문턱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의사로서는 미국 의사가 한국 의사에 비해 절반정의 환자를 보면서 돈은 두 배를 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이다.
공중보건의 복무 시절 미국 의사 자격시험공부를 많이들 하여, 나 역시도 자료를 모아 놓고 공부를 시작할까 잠시 고민했던 순간이 있었다. 특히 영어는 자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갈 것을 조언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 가게 되면 시민권이 없는 사람으로서 좋은 수련 병원에 합격하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괜한 자존심이 건드려졌던 것 같다. 차라리 한국에 남아 빅 5 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사실 의사 국가고시 공부를 하면서 글자라면 진절머리가 나서 게으름이 마음의 소시로 둔갑하여 핑계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 삶의 방향을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을 점차 느끼고 있다. 아니면 젊음의 패기를 잃어서 그저 두려움이 많은 아저씨가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