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파견
큰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보는 것이 수련 과정의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아마 글로만 배우던 것을 실제로 보고 익힐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 증상들이 환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환자가 어떤 말을 하며, 검사 결과들은 어디를 가리키는지. 약은 어떤 효과를 보이는지, 환자들은 어떻게 회복하는지. 그런데 오늘 직접 아플 때가 평생 기억에 남는 의학 강의가 된다는 걸 배웠다. 내가 모든 질병들을 다 겪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늘 어지럼증에 대해서는 많이 배운 것 같다.
전날 당직이 평소 때보다 힘들어서 잠을 많이 못 잤다. 그래도 낮에 퇴근을 할 수 있어서, 늘 하던 데로 헬스장으로 향했다. 운동을 적당히 하고 가볍게 러닝머신에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느끼던 그런 어지럼이 아니어서 바로 자리에 앉았지만, 숨 쉬는 것도 불편해지면서 두통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신경학적 증상 중에 두통이나 어지럼증이 생기면 “Red Flag Signs”라고 해서 응급한 상황을 구분 지을 수 있는 몇 가지 항목들이 있다. 안구 운동의 장애나 시야 문제의 발생, 삼킴 장애나 구음 장애 발생, 급격하며 심각한 강도의 두통 발생, 강한 충격 이후 발생하는 증상들, 목 경직 혹은 지속되는 두통에 동반된 발열 증상 등. 이런 증상들은 뇌출혈이나 뇌졸중, 뇌의 종양 혹은 뇌염 등의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질병들이 보일 가능성이 높은 증상들인 것이다.
일단 빨리 씻고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탈의실로 향했지만, 어지럼증이 심해지면서 탈의실 바닥에 그냥 누워버렸다. 지나가는 다른 분들이 걱정을 해주었지만, 말을 하는 것에 문제는 없었고, 그 상황에서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으로 가고 싶지 않아서 괜찮다고 말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팔이 저리기 시작한 게 운동을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신경 증상이 시작된 건지. 운동을 심하게 해서 뇌혈관 어딘가 터진 것이 아닌지.
그래도 누워서 가만히 있으니 상태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 빠르게 씻고 정말 가까스로 집까지 운전을 해서 도착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도 두통은 점차 심해졌고, 이윽고 몸이 떨리면서 구토를 심하게 하고 나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응급실로 몸을 이끌었다.
도착해서 아프다는 핑계로 직원분들께 진상 짓을 조금은 한 것 같았지만, 결국 응급의학과 교수님의 권유 따라 응급으로 뇌 CT 촬영을 진행했다. 다행히 뇌 쪽에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진통제를 맞고 상태가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좋아졌다.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는 2년 차 선생님이 주변에 언질을 주었는지, 순식간에 친구들이 와서 괜찮아진 내 상태를 보고 꽤나 놀리기 시작을 했다. 조롱을 당하면서도 같이 무엇이 문제였을지 감별진단을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 경추성 두통일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운동을 하다가 어딘가 잘 못된 게 극심한 증상까지 이어진 상황.
어쨌거나 민망한 마음에 응급실에서 빠르게 퇴실했다. 한쪽에는 뇌경색 환자가, 반대쪽엔 응급 투석 환자가 내원해 있으니 상대적으로 내 질병은 초라해 보여 거의 도망가다시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