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미라클 벨리에-인턴
다소 무거운 주제처럼 들리지만 20대를 지냈고, 30대도 이제 몇 달이 남지 않은 지금 '중년'이라는 수식어가 생뚱맞게 들리지 않는 시점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대개의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고 몇몇은 학부모가 된 이들도 있는데다가 내 선배들이 보면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심심치 않게 나 역시 "요즘 애들은..." 하는 말들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만큼 '나는 어떤 어른인가?'에 대한 고민은 이르지 않다고 본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부자관계로만 초점을 맞춰 연출한 영화 '사도'는 보편적인 정서인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춰 관람객들의 공감을 쉽게 이끌어냈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모두가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부모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이 겪으며 살아왔으니 이 영화에 공감을 느끼지 못할 사람들은 매우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세대차이라고 이야기하는 갈등의 현상은 이미 우리 부모들과의 힘 겨루기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부모 세대 역시 그들의 부모들과 숱한 전쟁을 겪으면서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 분명하겠고, 그들 역시 그네들의 부모와의 전쟁을 통해서 '나는 내 부모와 같은 구식은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수 만 번은 반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심에도 불구하고 내 부모 세대들 역시 우리들에게 그들과 똑같은 생각을 갖게 하고, 우리들 역시 우리 자식 세대들에게 똑같은 생각을 하게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부정적으로만 생각되지 않는다. 이것은 세상의 변화에 대한 필연적인 모습일 것이다. 우리의 부모 세대의 가치는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달랐을 것이고, 우리 세대의 가치 역시 우리 우리 부모 세대와는 다르며, 지금 세대의 사회적 혹은 개인적 가치 역시 우리와는 다르다. 즉 내가 살아온 가치로 앞으로 살아갈 세대를 가둘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식 세대에게 단지 몇십 년을 더 살아 온 선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앞으로의 시간은 그들의 가치로 만들어가야 할 역사로 내 주어야 할 뿐이라는 결론이다.
영조는 그가 이룩한 정치적인 업적보다는 아들을 죽인 아버지로서 후대에 기억이 된다. 물론 이런 사실에는 모계에 대한 태생적인 콤플렉스와 경종 독살설, 당파의 힘 겨루기 등의 이유들이 거론되지만 가장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이유를 하나를 꼽아 보라면 나는 '아버지의 세계의 유지'라고 하겠다.
영조는 그가 힘겹게 이룩한 세계를 그의 아들이 유지시켜 주기를 바랐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인재가 아닌 현재를 변화 없이 지속시켜 줄 또 다른 자기를 그의 아들에게 바랐을 것이다. 자신이 이룬 세계가 본인의 아들에 의해 그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는 것을 스스로가 볼 수 있을 만큼의 여유조차 그에겐 없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변화를 꾀하는 그의 아들을 그는 '어리고 미숙하다'는 이유를 붙여 홀로 설 수 없게 했고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아들에게 주입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비극으로 결말을 맺는다.
사실 이런 실수는 비단 영조의 경우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대로 우리들의 세상을 살아왔다. 기성 세대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룩한 우리 세대의 성과이다. 이로써 우리는 과거보다는 한 단계 발전된 역사를 이루었음을 자신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룩한 역사와 그 바탕이 된 가치를 신봉한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를 발전시킬 최고의 가치라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비극은 이때부터다.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되는 푸념의 시작은 새로운 세대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꼰대 정신에서 비롯된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이후부터 우리가 할 일은 새로운 세대에 대한 비판이 아닌 자기 성찰이 되어야 한다. 쉽게 올챙이적 시절을 기억해 내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는 청각 장애인 부모를 가진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소녀의 투쟁기이다. 양친과 남동생까지 청각 장애를 갖고 있어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폴라는 이 집안에서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러나 폴라는 단순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넘어 너무나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할 수 있는 소녀다. 말 그대로 폴라의 목소리는 부모 세대에게는 '너무한' 재능이다. 특히 세상과의 소통이 가장 필요한 때(폴라의 아버지가 시장 선거를 치르는 때)에 폴라는 자라 온 시골 마을을 떠나 대도시인 파리로 나가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기회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이 가족에게 닥친 갈등은 부모의 세대와 그 자식의 세대이다. 부모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는 가족이다. 모든 가족 구성원은 가족을 위해 삶의 가치를 다해야 한다. 가족을 둘째로 친 개인은 가족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물론 이런 부모 세대의 가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파괴되고 가치의 기울기는 그 다음 세대에게로 기울었다. 결말은 예상한 바대로 해피엔딩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가치에 과거의 가치는 자리를 내주었다. 한 발짝 진보한 것이다.
영화 '인턴'은 매우 모범적인 답안을 내놓고 있다. 기성 세대가 현재에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를 살고 있는 세대의 가치를 부지런히 배우는 것임을 보여준다. 기성 세대가 새로운 세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보임으로써 새로운 세대는 기성 세대의 가치를 존중한다. 이른바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말이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못한다 할지라도 역사는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가치로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과거에 최고였던 가치는 그때의 가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나간 가치가 재평가되고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존중되는 것도 새로운 세대의 일이다. 결코 과거 세대의 아집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일임을 인지해야 한다. 물론 과거의 가치에 안주하며 새로운 가치에 나를 맞추는 것이 피곤할 수는 있다. 그리고 개인의 결정으로 과거를 고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는 과거의 가치는 절대 현재를 리드할 수도 없고 미래를 창조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미래 세대를 키우고 그들의 가치대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계의 자양분이 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우리 부모 세대와의 갈등에서 이겨 우리의 가치대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를 만들어 냈다. 이제는 우리가 만들어 낸 세계의 토양 위해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 낼 새로운 가치의 세계를 위해 자리를 내 주어야 한다.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에게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한 우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해피한 엔딩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