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랑일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개인의 정신 건강에 훨씬 좋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하다. 대상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아주 순진한 바람일 뿐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나 자신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과거에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 다르다 해서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았다거나 그로 인해 남에게 험담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를 보기도 하는데 이처럼 바보 같은 일은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쉽게 말하는 "걔 변했더라, 예전에 그 애가 아니야." 하는 말처럼 멍청한 소감도 없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중에서 사람의 마음이 가장 자주, 빠르게 변한다.
마고와 루는 결혼 5년 차의 사이좋은 부부이다. 그러나 어느 날 마고는 여행길에서 우연히 대니얼을 만난다. 서로 강한 이끌림을 갖게 된 둘. 설상가상 대니얼은 마고의 이웃집에 살게 된다. 대니얼에 대한 감정이 커져 갈수록 루는 식상한 일상이 된다. 결국 마고는 루와 이혼하고 대니얼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대니얼 역시도 일상의 일부가 되기 시작한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의 줄거리이다. 영화의 번역 제목에서 묻고 있는 질문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해 보자면 "그렇다. 너네도 사랑이다."라고 말하겠다. 영화 제목을 어떤 의도에 의해서 번역을 했는지 직접 들은 바는 없어서 잘 모르겠다만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그리고 영화의 엔딩에서의 마고의 상태를 고려했을 때 '우리'는 아마도 마고와 대니얼을 포함하는 것 같으며 특히나 질문에 '도'라는 제한적 조사를 붙인 걸로 봐서 번역자는 마고와 루 부부는 사랑이 맞는 걸로, 하지만 마고와 대니얼의 관계는 사랑을 의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마고와 루의 관계는 명확한 사랑이고, 마고와 대니얼의 관계는 사랑을 의심해야 하는 관계인가? 아침 드라마 스타일로 본다면 마고와 루는 정식 결혼을 했으므로(아마도 초혼일지도. 그들의 과거는 모르지만) 분명히 사랑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관계이고, 마고와 대니얼은 일명 바람 난 관계이므로 이는 사랑이 아닌 관계라고 정의하는, 일명 불륜이라는 그런 관계인가? 사랑의 정의를 내리기도 힘들지만 당사자들 간의 아주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을 그들의 관계와는 상관없는 제 3자가 그들의 관계를 정의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본다.
이 영화를 두고 여자 하나, 남자 둘의 관계를 정의하는 건 아침 드라마 시청자들이나 '사랑과 전쟁' 열혈 팬들에게 맡겨 두기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감정의 변화'다. 오래전에 본 영화지만 이 영화가 굉장히 섬세하고 세련된 연출을 하고 있다고 느낀 점은 마고가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마고 역할을 맡은 미셸 윌리암스의 서정적인 마스크와 연기력도 훌륭했지만 중요한 것은 굳이 그녀의 연기력이 아닌 감독이 연출해 낸 영상의 구성만으로도 루와 대니얼의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고의 심정적 변화는 충분히 전달이 된다.
현재는 일상적이고 지루한 관계일지라도 시작은 일상을 벗어난 이벤트적인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 찬 관계였을 것이다. 그것이 익숙해지고 일상화되면서 느껴지는 지루함. 그리고 지루함 이후에는 새로운 설렘과 흥분을 찾는 여행을 하고 싶어 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마도 그렇지 않다면 그 인생이 비정상적이고 생기 없는 삶일 것이라고 본다.
영화의 시작과 동일하게 연출되는 말미의 장면. 영상은 몽환적인 분위기이고 주방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마고의 모습이 비친다. 그리고 서서히 마고의 표정이 보이는데 그녀의 표정은 생기가 없다. 일상의 지루함을 탈피하기 위해 새로운 설렘을 찾았지만 그 또한 설렘의 기한을 넘겨버렸음을 알 수 있다. 이후의 그녀의 선택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만든다.
코미디처럼 들리지만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처음의 설렘과 흥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해지고 이어 지루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설렘과 흥분을 찾는 수고를 하게 되고 그런 수고도 무색해질 정도로 새 것은 금방 낡은 것이 된다. 이것은 참고 인내하는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내가 인정하기 전에 이미 느껴지는 감정의 변화다. 내가 변덕스럽고,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란 말이다. 그런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생명이 있는 존재에게는 학습 효과라는 게 있어서 두어 번 해 본 일에 대해서는 예측되는 결과들을 정보로 활용할 줄 안다. 그리고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한다. 물론 이미 내린 결정에 대해서도 매 순간 혹시나 하는 의심도 갖고, 결정된 현재가 항상 과거보다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대니얼에게서 서서히 일상의 지루함을 느껴가던 중 루를 위로하기 위해 루의 집으로 간 마고는 루에게 어렵게 "만약에 내가......." 하는 말을 꺼내는데 루는 마고의 질문을 다 듣지도 않은 채 말머리를 돌려버린다. 이것이 마고에게는 잔혹한 현실일 것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기. 네 마음에 바람이 불어 너는 흔들리고, 흔들려서 네가 생각하기에 가장 옳은 선택을 했겠지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네 몫.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오롯이 결정한 사람의 몫일뿐이다.
부디 이것을 바람 피운 여자에게 주는 전 남편의 벌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