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PAN)
대개의 경우 동화를 생각해 낼 때면 천진했던 어린 시절과 더불어 아름다운 기억들이 동반되겠지만 내게 피터팬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이 감당해낼 수 없는 고통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때,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불편함과 고통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였고, 아무리 발버둥 치고 노력을 해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고난의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 나는 피터팬이 자주 생각이 났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묵묵히 참아내는 것뿐이었으며, 최대한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랐으며, 부디 그 순간이 빨리 끝나버리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든 생각은 누군가가 나를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마치 피터팬을 만난 웬디처럼 말이다.
남들에게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 네버랜드의 모험가. 어린이의 친구 피터팬이 나에게는 악몽 같은 현실을 도피시켜 줄 수 있는 미지의 존재를 표현하는 대명사였다.
조 라이트 감독의 2015년 작 PAN은 피터팬의 시작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이야기의 시작이 아주 좋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영국의 한 고아원. 고아들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다 못해 고아들을 해적들에게 팔아 넘기는 악질 원장 수녀가 있는 고아원. 피터팬의 시작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지루하고 외로운 어린이들을 신나는 모험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어린이의 친구 피터팬의 시작은 본인 스스로도 버림받은 소년이었다는 얘기다. 즉 그가 어른이 되지 않는 영원한 소년의 몸으로 어린이의 친구가 된 것은 일종의 동병상련의 정서가 바탕이라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 피터팬에게서 동병상련의 정서를 끌어내 이 이야기의 시작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도 나의 옛 시절에 대한 기억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피터팬의 이미지는 저승 사자 특히 어린이 담당 저승 사자의 이미지로 옮겨가기도 했는데 이게 좀 오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사정을 보면 그게 또 아주 황당무계한 인과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전쟁 중이고,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려 있고, 외톨이가 된 아이들이 모여 시설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운다(어른들이 시작한 전쟁에서 또 어른들에 의해 아이들은 이중의 피해를 입는다). 심지어 아이들을 팔아 넘기기도 한다. 동화적 상상력으로 고아원의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기는 했지만 실제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처럼 참혹한 현실은 없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아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한두 명씩 사라져간다. 그리고 남겨진 아이들은 사라진 아이들이 새로운 가정으로 입양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부러워한다(고아들에게는 고아원을 벗어나는 것이 고난의 끝이라고도 생각했을 것). 즉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은 그들이 처해져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피터(피터팬이 되기 이전의 보통 인간 아이) 역시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엄마가 찾아와 그를 현실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다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결국 피터는 그 자신이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현실을 도피시켜 주는 엄마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엄마가 인도해 주는 도피처는 네버랜드가 된다. 현실과 현실과는 다른 또 다른 세계. 그리고 그곳을 인도해 주는 존재. 좀 으스스하지 않은가?
한때 잔혹 동화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들이 우리가 알고 있었던 행복한 결말을 맺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에게는 차마 들려 줄 수 없는 공포스러운 설화였음을 일깨워 준 이야기 책들이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피터팬의 시작을 잔혹 동화로 이해한 것은 너무 멀리간 생각일까? 물론 그렇고 아니 고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문득 그 힘든 시절을 피터팬을 만나지 않고 묵묵히 견뎌낸 나의 10대 시절은 굉장히 용감했구나 하는 생각도 스쳤다.
영화 속 장면 중 인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인어의 모습은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나 이것을 원작으로 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에리얼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원초적인 인어를 표현해 냈다. 반인반어의 모습을 한 일종의 바다 요괴.
검은 수염과 요정족, 마치 중국의 소수 민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원주민들의 전쟁과 원시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인어 요괴의 등장까지 네버랜드도 현실의 세계와 다르지 않게 시끄럽고, 폭력이 난무한 세계다. 물론 피터는 피터팬이 되어 아직은 적으로 등을 돌리지 않는 후크와 함께 네버랜드 최대 악당인 검은 수염을 처치하지만 이후 친구였다가 적으로 돌아선 후크와는 네버 앤딩 전쟁을 다시 치러야 하니 말이 좋아 스펙터클한 모험의 나라지 시끌시끌하기는 네버랜드나 현실 세계나 그리 달라 보이진 않고.
물론 이런 감상은 아주 개인적인 시점에 의한 것이니 영화를 이렇게 극단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누가 뭐래도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네버랜드를 환상적으로 표현한 영상 기술이니 말이다.
그러나 혹시, 혹시라도 인생에 어떤 힘든 시절 현실에서 당신을 구원해 줄 피터팬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가 인도해 주었을 또 다른 세계도 그다지 녹록한 세상은 아니었을 것과 더불어 피터팬의 도움이 아닌 본인의 인내로 그 시간을 겪어낸 스스로에게 칭찬 한 번 해 주시길. 적어도 우리는 괴로운 현실을 맞부딪혀 이겨낸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