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이야기하다.

SHAME - HER

by 백경화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다. 개인의 취향 혹은 각자가 갖는 스타일의 차이로 같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며 상대와 내가 맺은 관계를 바탕으로 해서 나는 상대의 사람됨을 정의하고 그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한 인간이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취하는 행동은 달라진다고 믿기 때문에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고 보다.


타인과 관계 맺음에 대해 엄청난 무게감을 느끼는 한 남자가 있다. 사회적으로도 안정적인 위치에 있으며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매우 신사적이다. 매력적인 남성이며, 능력 있는 사회인이다. 그러나 비즈니스적 관계를 제외한 개인적 관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일회성 교제만을 고집한다. 단순히 취향적인 모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본인 스스로도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외롭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고 표면적인 외로움이 가시고 나면 이내 자기의 행동을 후회한다. 나름으로는 노력도 하지만 오래된 습관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병 적인 듯한 모습이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인간적인 관계에 의해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신뢰하고, 배신하고, 용서를 하거나 복수를 하는 인간의 행위들은 모두 서로 간의 관계 맺음에 기인한다. 타인의 시선에 의연히 행동하라 혹은 행위의 주체인 나에게 집중하라는 이야기들도 따지고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됨으로 야기된 문제들에 대한 일종의 방지책인 것을 모르는 이들이 없을 것이다.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서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보다 단순한 관계를 맺었던 시절보다 더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된다. 특히 매우 개인적인 관계로 맺어진 관계의 경우에는 더욱 미묘하고 복잡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상대와 타협되지 않은 감정은 불쾌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고 이러한 감정의 경우 즉 상대는 어떤 의도였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나의 기분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할 경우 내가 느낀 감정은 대개 오픈되지 않은 채 그 이유를 고민하게 된다. 상대는 나에게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가? 그런 반응이 보일 때의 주변 환경은 어땠는가? 나는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던 것일까? 내가 상대의 반응에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맞는 것인가 아니면 쓸데없는 감정 낭비인 것인가? 쉽게 생각하면 "너는 내게 왜 그러는 거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주인공 브랜든과는 다르게 여동생 씨씨의 경우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에 집착한다. 마치 타인에게 투영된 자신을 확인하는 것으로 비로소 본인을 실존적 존재라고 믿을 수 있는 것처럼 타인과의 관계에 집착한다. 그녀의 끊임없는 관계에 대한 욕망은 자존감의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상대와의 타협되지 않은 관계로 인해 버림받고 상처받기를 되풀이하지만 브랜든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한다. '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나는 존재하지 않아, 아니 존재할 필요가 없어.'를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녀의 감정은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직진하면서 그녀는 소진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마치 브랜든이 본인 스스로도 일회적인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자기 혐오를 보이 듯 격렬하게 말이다. 브랜든을 단순히 섹스 중독자로 얘기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에게 섹스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물리적인 표현일 뿐 그 어떤 가치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관계의 지속은 신뢰와 책임을 수반한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것처럼 상대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서로 간의 신뢰가 있어야 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네가 나를 사랑하는 동안에는 나도 너를 사랑해야 한다는 책임이 뒤따른다. 다소 딱딱해 보이지만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생명이 없는 상대를 사랑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조건은 성립한다. 어린 시절 마음의 위안을 주는 인형의 예를 보더라도 아이는 인형에 대한 신뢰와 책임을 다한다. 물론 인형은 무생물의 존재이므로 일방적인 노력만을 필요로 하지만 말이다. 조금 더 발전된 상대로 반려 동물만 보아도 이러한 조건의 필요성은 서로 소통될 경우에만 관계의 지속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는 컴퓨터 운영체제인 사만다를 사랑한다. 최초의 탄생은 테오도르 자신이 원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바탕으로 사만다를 탄생시키지만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소통하면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켜 나간다. 굳이 '스스로'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사만다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소통이 되는 존재라는 점이다. 비록 실존하지 않은 가상의 존재라고 하지만 테오도르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면서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요구하는 인격을 갖춰 진화한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서서히 사만다의 존재가 가상의 존재라는 점을 망각하게 된다. 사만다를 의지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셰임'의 브랜든과 '그녀'의 테오도르 중 누가 더 외로운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어느 쪽에 손을 들 수 있을까?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데 있어서 누구나 관계가 주는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 가느냐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절대적 무게감은 다르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관계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고서는 어떤 관계든지 그것을 지속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발전적인 관계로 진화할 수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는 그 무게감을 서로가 나눠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브랜든에게 호감을 보였던 여인. 브랜든도 이 여자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그들의 관계는 불발에 그치고 만다. 브랜든의 눈길을 사로 잡은 지하철에서의 여자. 영화의 끝에서 브랜든의 시선이 여자의 모습을 훑고 마지막에 여자의 결혼 반지에 머물렀다는 것은 관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브랜든의 모습을 은유한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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