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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l Jul 27. 2021

여름을 여름답게

에어컨 없이 살기


내가 여름에 꼭 읽는 책, 김소연의 <나를 뺀 세상의 전부>


올여름은 의도치 않게 에어컨 없이 사는 중이다. 지구에게 약간의 반성문을 쓰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정말 더워도 너무 더운 것이 문제였다. 집으로 들어오면 더운 기운에 숨이 턱 막혔다. 밥, 설거지를 뒤로 하고 옷을 풀어헤쳐 찬물에 몸을 맡겨야만 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도 땀이 맺힌다. 삐질삐질 배어 나오는 열과, 땀을 식혀 오는 선풍기 바람, 얼음을 올려놓은 이마에서 흐르는 차가운 물을 훔치기까지. 문득 이토록 여름을 여름답게 보내는 것이 얼마만인가 생각에 잠겼다. 여름을 보내는 행위가 묘하게 내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오래된 일이다.


스무 살 이후로는 에어컨 없이 살았던 기억이 없다. 여름내 창문은 꼭꼭 닫혀 있었다. 반대로 에어컨을 끄니 창문이 24시간 개방이다. 풀벌레 소리와 매미 소리가 이렇게 컸나, 놀랐다. 아침이고 밤이고 끝없이 울어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도 소리를 제대로 듣는 건 내 생애 처음 같다.


어른이 되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 회사 생활을 하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마냥 바빠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어쩌면 계절을 계절 그대로 맞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사무실은 계절 상관없이 언제나 똑같으니까. 구분 없는 연속면은 마찰이 적은 법이다.


올 연말에는 속절없이 시간만 빨리 갔다고 한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올여름엔 얼음을 달고 살았다고, 찬물 샤워를 너댓 번씩 했다고, 매미 소리가 참 크더라고. 올여름은 참 길고 더웠다고. 순간을 기억할 에피소드가 가득이라서.


여름을 여름답게.

흘러가는 시간 속 뾰족한 이정표 하나를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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