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도 에세이
백문백답을 하던 중 뇌리에 박힌 질문이 있다. 어릴 때로 돌아가면 뭘 계속하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무의식적으로 피아노를 꾸준히 배우고 싶다고 적었다. 당시에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고민이 많았기에 이렇게 적은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당장 피아노를 사고 레슨을 신청했다. 피아노를 치면서부터 진정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야심 찬 동네’라는 인문학 모임에 들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반적인 커리큘럼 사이에 드림캐쳐를 만들어 보는 공예 수업이 있었다. 책과 함께하는 평소 일정은 조금 긴장이 되고는 했는데 공예라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들으러 갔다. 하지만 공예는 뜻하지 않게 내 의문에 답을 찾는 과정 중 하나가 되었다.
일상에선 생각이 다르면 존중받지 못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적막이 흐르면 어색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공예 중에는 내가 일상에서 불편하게 느꼈던 상황들이 정반대로 느껴졌다. 그림을 그리며 생기는 적막은 또 다른 세상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내 눈엔 이상해 보이는 그림을 다른 사람들은 칭찬해주었다. 모두가 다른 색을 사용하며 본인이 칠한 색이 이상하다고 하지만, 그 색은 다른 사람은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본인 고유의 색임이 느껴졌다. 선과 곡선에서 나타나는 떨림마저 그림에 대한 애정과 신중함으로 존중되었다. 모든 것이 허용되는 이 시간은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신비로움을 주었다. 순간 이게 내가 찾아왔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공개할 때마다 난해한 반응이었던 글쓰기에 회의감을 느끼던 터였다. 글로는 온전히 나를 표현하지 못한다며 좌절해왔기에, 어느 것도 부정되지 않는 예술의 순수함에 단순간 매료되었다. 한동안 원데이클래스들을 다니며 그림에 빠졌다. 하지만 표현 방법엔 도구가 중요하지 않고, 대상을 위한 배려만 있으면 된다는 어느 강사님의 말에 방황은 끝이 났다. 피아노로 시작해 글을 쓰고, 그림까지 그리게 된 과정들. 이는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를 찾아다녔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도구를 찾아다니는 걸 멈추었고 오랫동안 앉지 않았던 책상에 다시 앉았다.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의 저자 이국환 교수는 예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예술은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느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재현한 것이다.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등 예술의 양식은 달라도 근원은 인간이 지닌 아름다움에 관한 감성과 그것을 표현하는 본성이다.”
우리는 치열한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놓치며 산다. 예술은 여유 있는 자만의 것이라며 내 삶과는 연관이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한다. 어쩌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아노를 시작했던 건 놓치고 살았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낀 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며 새로운 도구를 찾아다녔던 것이 아닐까.
아름다움이 있기에 표현 또한 있을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이젠 표현하려 애쓰기 전에 아름다움을 만긱하려고 한다. 느끼고 느끼다 보면 표현도 자연스레 늘거라 믿는다.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된 오랜 여정이었다. 이 끝엔 아름다움만이 남았고, 이로 인해 내 삶은 예술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