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퀸즈 갬빗>
「퀸즈 갬빗(The Queen's Gambit)」 시즌1 넷플릭스」
동양권 문화의 장기(將棋)가 있듯이 서양권에는 체스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게임 중 하나인 체스는 가로, 세로 8개의 칸에 각자의 말 16개를 가지고 겨루는 게임으로 상대방의 말인 ‘킹’을 잡으면 게임이 끝이 난다. 단순해 보이지만 수많은 전략과 방법이 있는 게임으로 토너먼트나 세계대회 등의 형태로 스포츠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체스의 가장 특이한 점이 바로 매너이다. 체스는 매너를 중요시하고 기권이나, 무승부 같은 형태로 게임을 끝내거나 잠시 멈출 수 있다. 한번쯤 체스를 해봤다면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말은 ‘킹’아 아닌 ‘퀸’인걸 알 수 있다. 다른 말과 다르게 움직이는 방향이나 거리가 자유롭고 ‘킹’과 마찬가지로 각 플레이어가 하나씩만 가지고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할 드라마는 자신의 능력을 모두 체스에 쏟아 부었던 어린 소녀가 체스판 위에서 ‘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아빠가 집을 나간 후 엄마와 단둘이 살았던 베스는 교통사고로 고아가 된다. 기독교 보육원으로 들어가게 된 9살의 베스는 친구 졸린을 만나게 되고 그녀로 부터 보육원에서 잘 지낼 수 있는 여러 가지 팁을 얻게 된다. 보육원에서 주는 신경안정제를 점심때가 아닌 자기 전에 먹어보라는 졸린에 말에 베스는 자기 전 초록색의 신경안정제를 먹기 시작한다. 수학적 머리가 뛰어났던 베스는 수업시간에 문제를 다 푼 후 심부름으로 보육원 지하실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보육원 관리인 샤이벨을 만나게 된다. 샤이벨은 체스 판을 앞에 두고 흑, 백 두 말을 움직이며 시간을 보냈고 베스는 이 광경을 오랫동안 지켜보다 샤이벨에게 체스 두는 법을 배우게 된다. 명석한 베스는 빠르게 체스의 공식과 전략을 배웠고 곧이어 샤이벨을 이길 수 있는 지경에 도달한다. 15살이 된 베스는 한 가정집에 입양 되고 거기서도 체스만이 유일한 친구가 된다. 도시에서 주최하는 토너먼트 경기에 나가 생활고에 걱정이 많은 양어머니를 돕고 싶었던 베스는 보육원 관리인 샤이벨에게 편지를 해 토너먼트 참가비를 빌리고 체스 대회에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흥미가 종종 떨어질 때가 있다. 아무래도 작품의 완성도나 다루고 있는 주제가 너무 평범하거나 시대착오적이면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최근에 봤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 단연 돋보였던 퀸즈 갬빗>은 월터 테비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빠른 호흡과 감각적인 연출, 그리고 이러한 연출을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설정들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주인공 베스는 친부모님에게 버림받는 것처럼 헤어지게 되고 15살이라는 꽤 성숙한 나이에 새 가정에 입양되었지만 양아버지와는 사업 때문에 오랜 시간 떨어져 살게 된다. 나중에는 결국 양어머니 앨마와 양아버지가 별거하게 되면서 베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오랜 시간 우울과 싸워오던 앨마는 곧이어 베스의 양육까지 걱정을 해야 했고 이를 본 베스는 체스 경기에 나가 상금을 타서 도움을 주려한다. 사실 그는 체스를 두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겠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는다. 베스의 천부적인 재능으로 나가는 경기마다 우승을 하면서 많은 상금을 얻게 되고 앨마도 이 사실에 기뻐하며 그의 경기를 따라다니면서 술과 음악에 빠져살게 된다. 이를 지켜본 베스는 앨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점점 그의 모습을 닳아가게 되고 어린나이부터 술과 담배를 시작한다. 체스 신동이 점점 쾌락과 중독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사실 베스의 이런 행동을 그리 놀라운 점은 아니다. 보육원에서 안정제를 받아먹던 시절, 체스판과 말이 없었던 그는 자기 전 안정제를 두 세알 먹고 천장에 보드를 그린 뒤 머릿속으로 체스를 두면서 연습을 하고 베스의 유일한 스승이었던 샤이벨이 알려주지도 않은 공략을 스스로 깨우치기도 한다. 점점 안정제에 의존하면 할수록 친구인 졸린은 약의 남용을 경고하지만 당장 체스를 두고 싶은 베스에게 이런 친구의 말이 들어올 리가 없었고 결국 그녀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 안정제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준다.
고아, 보육원 학생, 체스 신동, 알코올중독자 등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이며 성장을 하는 배스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러시아의 플레이어 ‘보르고프’다. 베스는 그와 대결하기에 앞서 러시아어 수업을 들으면서 준비를 하기도 하고 그가 참가하는 대회에 동참하여 여러 사람들을 꺾고 그와 만나기도 했으나 이길 수는 없었다.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베스가 보르고프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한 여정은 마치 체스판 위에서 상대방의 말 ‘킹’을 향해 점점 수를 조여 가는 것처럼 보인다. 베스에게 인생은 체스판과 다름이 없고 그 중에서 배스는 가장 능력이 뛰어난 말 ‘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바로 앞서 말한 베스의 인생을 체스판 위로 옮겨놓았다는 것이다. 스스로 혼자라고 느끼고 혼자서 거의 모든 행동을 했던 베스는 원하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얼마나 멀던 가깝던 빠르게 갈 수 있는 ‘퀸’이었고 그 옆엔 베스의 소중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슬프게 헤어졌지만 자신의 모습을 물려준 친엄마, 체스를 처음 알려줬던 샤이벨, 보육원의 유일한 친구 졸린, 베스를 항상 믿어줬던 양어머니 앨마, 체스경기에서 만난 쌍둥이 형제, 처음으로 우승을 안겨줬던 해리, 그랜드 마스터 베니 등 베스 주위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인물들이 말들로 각자의 자리에서 이 게임의 승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베스를 도와주고 있다.
그렇다면 베스가 쓰러뜨려야 하는 상대방의 ‘킹’이 바로 보르고프가 맞을까. 베스가 몇 년 동안이나 그에게 져가면서 다시 또 도전하는 부분에서는 맞다고도 할 수 있고, 더 크게 봤을 때 베스가 스스로 넘어서지 못했던 자신의 태도와 성격이라는 점에서는 보르고프가 단순히 이겨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체스라는 게임이 매너를 중요시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아마 후자의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체스 판 위 나의 ‘킹’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때, 끝까지 맞서 싸우기보단 기권을 하는 것이 스포츠맨쉽이이라고 샤이벨이 어린 베스에게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마지막인 베스와 보르고프의 대결에서도 샤이벨이 가르친 체스의 스포츠 맨쉽을 확인할 수 있고 이 장면이 베스에게 체스 판 위 ‘킹’을 넘어 또 다른 시작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장면으로 꼽고 싶다.
이 작품이 가슴 따뜻한 여러 드라마나 영화들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힘껏 움직이는 울림은 약하지만 엄청난 흡입력으로 시청자들에게 생소했던 체스의 세계와 그 세계를 맘껏 누비고 싶었던 소녀의 성장기를 통해 강한 여운을 선사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