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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요원 Oct 28. 2020

난 아직도 과거를 노래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

밴드라는 게 멀리서 보면 그렇게 자유로워 보일수가 없다.

각자 튜닝을 하고, 지지직 거리는 앰프를 만질 때면 음악을 한다는 사람의 멋이라는 게 저런 거구나 괜히 마음이 울렁인다.


딱 그런 마음에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들어간 밴드부는 학교에 서너 개쯤 있는 평범한 밴드부였지만 중고등학교 때 교회 반주 정도 했던 실력도 받아주고, 아예 악기를 다룰 줄 몰라도 들어와서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비록 한 번의 공연, 약 1년 간의 활동을 했지만 아직도 찬바람 들어오는 과실에서 앰프 연결해가며 연습하고 키보드 페달을 사러 다 같이 낙원상가에 갔던 일이 생생하다.


애당초 진지한 마음으로 시작한 활동도 아녔기에 열기도 금방 식었고 친한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가면서 자연스레 나도 밴드에서 나오게 됐다. 영화 <소공녀>처럼 흩어진 그때 그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듣기만 해도 악보를 줄줄 쓰고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알았던 친구는 운동과 글 쓰는 일에 빠졌고 노래하고 학원까지 다녔었던 친구는 지금 웹툰 회사에 취업을 준비 중이다. 


딱 한 명 계속 밴드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밴드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회사에 다니고 공연도 하고 언젠가는 음반도 냈다. 처음엔 내 멋대로 판단했고 나중엔 대단해 보였고 지금은 저런 게 원동력인가 싶다.


밴드 음악이라는 게 사람들에게 쉽게 오해를 사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어 할 때면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지만, 누군가 밴드를 한다고 하면 '철없는 어른'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그만큼 밴드는 낭만적인 일이다. 각자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야 하고 또 하고자 하는 음악정 방향성도 비슷해야 하며 다 같이 예술이라는 그 애매하고도 아름다운 영역에 반쯤은 빠져있어야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성우도 하나 둘 떠나간 멤버들의 자리를 어떻게든 채우려 노력하지만 결국 혼자 남게 되고 고향에서 마주친 동창들이 늘어놓는 한탄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끝내주게 노래를 부르던 첫사랑은 채소 트럭을 몰고, 음악의 꿈을 심어준 학원 원장 선생님은 알코올 중독이 되고, 밴드를 찾는 곳은 점점 없어지는데 음악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한 친구들도 다를 바 없다.


누군가에겐 청춘시절 잠깐 꿈꿨던 음악이라는 게 성우에겐 버티고 사랑해야 할 오늘이다. 갈수록 음악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시련들을 겪게 되는데 '너는 그래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잖냐'라는 친구들은 성우에게 음악을 택한 벌을 달게 받으라고 그 슬픔이 잔뜩 끼어있는 성우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한다. 밴드는 낭만이 맞지만 낭만이 꼭 고독일 필요는 없는데...


사실 나는 아직도 그때가 가끔 그립다. 다 같이 한번 합이 맞을 때 좋아하던 그 얼굴, 서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나누는 현장, 내 자리가 분명한 그 곳. 그래서 나는 가끔 과거를 노래하고 지금 밴드를 하는 그 사람을 응원한다.

내겐 순식간에 사라진 작은 불꽃이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 속에 뜨겁게 타고 있을 것이기에 낭만을 아는 사람들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그 꿈을 포기하더라도 그 과거를 종종 노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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