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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요원 Jun 05. 2017

첫 실패

비관주의 현실 비판주의 허세 주의 대4병주의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안 하고 불편하게 노는 것보다 더 힘든 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것이라고 느낀 오늘은 아마도 대4병에 걸려 취업과 불확실한 미래에 고통받고 앞으로도 고통받을 날들의 시작이 되었다.


오늘 나는 어제 독서에 대한 강연을 들었음에도 실천하지 못했고 끝내려고 했던 일에 대해 묵인했으며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용이 아니라 남은 장수를 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도전한 취업에 아주 보란 듯이 떨어졌다.


열심히 준비했냐 물으면 조금 그렇다. 떨어진 이유를 알겠느냐 물으면 약간 아니다. 


오늘이 바로 앞으로 수십 번은 더 떨어질 낙방 향연의 첫 실패라면 나는 조금도 준비도, 처음에 붙는 게 어딨어 다 그런거지 하며 씁쓸하게 웃을 능청도 없었다. 그렇게 멍 때리다가 우연히 본 누군가의 합격이라는 문자를 보자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왜 더 잘 쓰지 못했을까. 왜 좀 더 열심히 준비하지 못했지. 왜 난 후회를 하고 있지. 전화로 통보받았을 때 왜 떨어졌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그 이유를 알면 더 처참해질까 봐. 사실 이유를 알 거 같기도 하다. 그만큼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떨어졌겠지. 영화 관련된 일이라는 것보다 돈을 준다는 그 세전 150이라는 숫자에 눈이 갔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못했겠지.


그런데 말이다. 이 세상엔 취업 성공담이 수없이 많은데 그 속에 돈 이야기는 없다. '돈을 따라가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라는 말은 이미 모순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한다. 나는 행복의 종착역보다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중에 하나가 돈이다. 돈이 있으면 이동진 씨의 시네마 토크를 매번 갈 수 있고,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영화 한 편을 봐도 좀 더 좋은 자리에서 좋은 사운드로 큰 화면으로 즐길 수 있다. 돈이 나의 좋아하는 것들을 가능케한다.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날 세속적이고 열정 없는 사람으로 치부한다면 난 정말 슬플 거 같다.


앞으로 남은 날들이 많다고, 앞으로 맛볼 쓴맛이 더 고되다고 징징거리지 말라는 말은 사양하겠다. 모든 첫 실패는 비관의 끝을 달려도 좋다. 그러다가 어딘가에 합격되면 이 글을 지울지도 모르겠지만.


인생은 언제나 희미한 거라고 연신 있는 척을 해댔던 과거 나에게 한 것 비웃어주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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