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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요원 Jul 03. 2017

백수의 삶은 사실 나를 위한 시간

 맨 처음 일을 시작한 건 수능 이후 피자집에서였다. 십 대의 기운이 가시기 전에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을 만나 대학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처음으로 술맛을 보고, 불행하게도 사장의 불합리한 대우를 느껴보았다. 온전히 내 주머니로 오는 돈의 유혹에 이끌려 편의점, 빵집, 그리도 또 다른 편의점, 학교 서포터즈, 도서관 알바, 교무과 알바, 학교 부서 알바를 마지막으로 약 4년간의 쉴틈 없는 알바 생활을 이어왔고 이제야 막을 내렸다. 


 일을 할 땐 쉬고 싶고, 쉬자니 쓸 돈이 없던 나는 그렇게 매일 노동을 해왔다. 그게 감정노동이던, 물리적 노동이던 노동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인간은 본래 노동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던데... 언제나 놀고 싶었지만 언제나 아침에 출근을 했다. 술을 먹고 다음날 늑장을 부리고 싶어도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야 했다. 


 그런 내가 이제 백수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안하다. 항상 무언갈 했던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니 너무 허전하다. 들어오는 돈이 없고 날 깨우는 알람도 더 이상 없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침대에 눕는다. 보고 싶은 영화를 하루 종일 볼 수 있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하고, 운동을 할 수 있음에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여전히 일을 하고 싶다. 일중독이라기 보단 누군가에 의해 시켜서 하는 것에 익숙해져 온전히 나를 위한 나의 명령이 끊겼다. 일을 할 땐 퇴근하고 영화 한 편을 꼭 보고 자고, 자기 전 스트레칭과 가벼운 운동을 하기도 했다. 반면 시간이 전부인 난 그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을 해야겠다가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을 할 때가 왔다. 나를 위해 감정을 소비하고 나를 위해 발 아프게 뛰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게 무엇이던. 그게 맞던 그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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