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아니 적어도 20 30대 사람들 중에서 라라랜드를 아직까지도 못 본 사람은 감히 장담하건대 몇 안될 것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큰 울림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작년 말에 개봉하여 올해 4월까지 상영한 작품 라라랜드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은 작품이다. 왜 그토록 우리나라 사람들이 라라랜드라는 이 영화에 열광하게 된 걸까.
철저히 개인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정말 영화를 보는 순간부터 버스를 타고 집에 와 글을 쓰고 침대에 눕는 순간까지 그 보랏빛 향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작품이다. 오늘의 글은 아마 지금까지 글 중에 가장 편파적일 것이고 아주 감정적일 것이다. 영화를 보자마자 여운이 가시기 전에 블로그에 글을 올렸었는데 그 첫 문장이 바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정말 미쳤다.'이다. 나는 이 문장을 또 한 번 사용하고 싶은데 라라랜드는 정말 미쳤다. 이 작품을 만든 감독도 미쳤고 세바스찬을 연기한 라이언 고슬링의 이미 위로 떨어지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미쳤다. 아직도 안 본 사람이 있다면 바짓가랑이 붙잡고 꼭 보라고 말하고 싶다.
라라랜드 각본을 6년 동안 쓰다 하겠다는 회사가 없어서 만든 작품이 위플래시다. 음악영화가 이렇게 폭주할 수 있는지 처음 안 작품이다. 말 그대로 관객들의 마음에 사정없이 채찍질하는 영화는 존재감이 아죽 확실했고 감독의 이름을 단번에 외우게 했으며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게 했다. 아마 다미엔 차질레 감독이 라라랜드를 찍을 당시 정말 작은 것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을 것이다. 칼을 갈고 나온 작품 같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거의 모든 항목에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가진 라라랜드는 뮤지컬 영화의 해피엔딩이라는 틀을 깬 작품이다. 물론 시카고 같은 영화도 있었지만!
영화는 수많은 판타지적 요소, 감정 없는 사람과 맞이한 이상하게도 너무 아름다운 경치, 갑자기 만난 운명 같은 사람, 자신들의 꿈을 이해해주는 서로, 밤하늘에 눈 아프게 쏟아지는 별들과 같이 아름다운 순간들은 사실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암담한 현실을 비추고 있다. 그렇게 눈시리게 멋졌던 경치는 대낮에 보니 형편없고, 상대방의 꿈이 더 이상 이해되지 않고 같이 시간을 보낸 영화관은 폐업을 한다. 방 천장 구석에는 스멀스멀 곰팡이가 피어나고 처음으로 연 일인극에 대해 모욕적인 말을 듣고 재즈가 아닌 길을 가게 된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어 놓은 것은 그들의 이상인 할리우드, 재즈클럽에 도달한 그때가 아니라 세트장 안 커피숍에서 일한 미었고 원하는 재즈바 근처 주유소에서 커피를 마시던 세바스찬이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당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세요! 사랑은 이렇게 낭만적입니다!' 가 절대 아니다.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맛을 한 번에 녹여낸 라라랜드는 이러한 점에서 달콤하지만 쓰고 쓰지만 달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항상 너를 사랑할게 라고 말하지 5분도 안돼서 다른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린 미아의 모습을 보여줄 때 미아와 세바스찬 모두 성공하지 못하는 걸로 막을 내렸으면 좋겠다는 나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장면들은 그들의 꿈과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렇게 그들의 인생은 흘러나오는 추억의 노래에 잠시 발길을 멈추기도 하고 다시 뛰고 오랜 세월 지난 뒤에 다시 뒤돌아보는 것으로, 또 어디쯤 왔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렇게 다시 흘러 흘러가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노래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city of star와 미아와 세바스찬의 테마곡을 떠올릴 텐데 나에게 일등은 미아의 오디션 곡이다. 미아가 배우가 되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을 했던 이모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 자신의 이모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속에 언급되지 않는다. 여기서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결망이 정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인생이고 우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미아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돌고 돌아 알 수 없는 현실에 봉착하게 되고 옛일들을 추억하고 회상하고 다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유럽의 센강에 몸을 던졌던 미아의 이모가 바보처럼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또다시 그 차가운 현실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그 노래는 우리를 향한 노래다.
여기서 바로 지금의 나는 무엇이고 어디까지 왔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됐다.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크락션을 울려주었던 것처럼 지금 나는 크락션을 울리는 사람인지 그 크락션을 듣고 놀라는 사람인지도 생각해보게 되고 그저 이런 영화를 보고 있는 나에 대해서도 갑자기 약간의 분리현상 같은 게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판타지적 요소들 때문에 이영화가 좋다가 말았다는 사람들도 있고 결말이 아쉬웠다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그러나 이 판타지가, 현실적이 이 결말이 이 영화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또 이 영화로 내게 크락션이 과연 뭘까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영화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영화는 나에게 여러 가지 선택을 하게 만드는 각성제가 되고 있다. 꼭 그 영화처럼 살아야지가 아니라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의 나의 위치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영화란 바로 이런 영화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