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표현하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상대방에게서 사랑을 언어로써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랑이라는 것이 언어로 표현될 수 있을까. 우리가 언어로 표현된 사랑을 구걸하고 있진 않을까. 이번에 재개봉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1992년 작품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보드를 들고 바다로 뛰어든 청각장애인 시게루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잔잔하고 비언어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 사랑에 대한 강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이 작품의 처음과 중간은 지루하다고 느낄 정도로 잔잔하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시게루와 그의 여자친구가 그저 일상처럼 바다로 가서 서핑을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배경음악도 거의 없고 주변 인물들의 대사가 많지도 않다. 그런데 묘하게 모든 장면 장면에, 시게루의 표정 하나하나에 매료됐다. 시게루가 무언가 홀린 듯 부러진 보드를 바라보는 장면도, 그 보드를 다시 고치는 장면도, 보드를 타러 가는 길에 여자친구를 만나는 장면도 모두 이상할 만큼 관객들이 집중하게 만들었다. 보드를 타다가 파도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게루의 모습과 그 모습을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장난기 넘치게 바라보는 여자친구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웃는 것이 아니라 입가의 미소만이 그 모든 감정을 대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말을 할 수 없어서 모든 장면에서 절제된 아름다움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모래사장에서 자신과 떨어져있는 그녀를 부르기 위해 던지 돌이 내 마음에 돌을 던졌다. 보드 때문에 버스에 타지 못한 시게루를 향해 달려가던 그녀의 큰 발걸음소리가 바로 그를 향한 사랑이었고 그에 대한 마음이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바다와 서핑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 시게루는 매일 바다로 발걸음으로 옮겼고 마찬가지로 그녀도 항상 같은 자리에서 시게루의 뒤를 따르며 언제나 함께했다.
이 영화가 소리 없이 따뜻한 이유는 어느 누구도 이들을 장애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에 시게루를 귀머거리라고 놀리는 남자애들도 결국 그에게서 자극을 받고 보드를 타면서 또 도움을 받는다. 보드 가게 사장도 시게루를 매일 바다에서 보드를 타는 소년으로 보았지 잠수복도 없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쓰레기 처리장 사장도 시게루를 일반 직원 그 이상, 이하로 보지 않았다. 시게루 스스로도 자신에게 장애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것도 모르고 경기에 임하지 못했을 때도 자신의 상황을 내세우기보다 말없이 뒤돌아 다음을 기약했다.
시게루가 이유 없이 보드에 끌린 것처럼 나도 이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에 이유 없이 끌렸다.
마지막에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린 그를 추억하는 것은 보드와 사진 한 장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기타노 다케시 말하고자하는 사랑은 그렇게 이유 없는 끌림으로 시작되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도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