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있어요 <아이 캔 스피크>

by 영화요원

매년 이맘때 즈음 개봉하는 영화들이 있다. 추석 영화. 주로 가족 간의 사랑을 다루면서 무겁지 않고 코믹적이다. 앞으로 약 일주일 후 개봉될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김형석 감독과 배우 이제훈, 나문희 주연의 작품이다. 영화 <파수꾼>에서 선보인 불안한 청소년을 벗어나 관객을 웃길 줄 아는 배우가 된 이제훈과 이미 웃음으로 저명한 나문희의 조합은 의외였지만 신선하고 재밌었다. 뿐만 아니라 코믹 연기의 도가 튼 조연배우들과 작은 설정 하나하나가 시종일관 입꼬리를 올리게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는 동생 입시로 직장을 옮기게 된다. 민재는 새로 옮긴 구청에서 매일 구청에 출석하며 수많은 민원신고를 넣는 할머니 나옥분(나문희)을 만나게 된다. 시장 상인들을 대변하는 옥분은 사사로운 위법행위뿐만 아니라 기업의 횡포에도 맞서기도 한다. 옥분은 오랫동안 영어에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좀처럼 잘 늘지 않았는데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민재를 보고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한다. 민재는 계속 거부했지만 종종 동생의 끼니를 차려주는 옥분에게 고마움을 느껴 영어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면서 민재는 점점 옥분과 가까워지고 옥분이 영어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마음 아픈 과거를 가진 옥분은 친구를 대신해 위안부의 현실과 일본에 대한 사과 요구를 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위안부 소재를 재치 있게 그려낸 이 작품은 전반부와 전혀 다른 분위기로 후반부를 이끌어간다. 원칙주의자 민재와 옥분의 대립과 함께 이번 년도 상반기 이슈였던 정치풍자를 보여주면서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을 점점 한 팀으로 만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옥분을 대하는 구청 직원들과 영어학원, 상인들을 보면 현시대에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세월 따라 느려진 걸음걸이만큼 충분한 배려가 필요한 세대에게 지금 젊은이들은 살아가기 바빠 주변으로 눈을 돌리지 못한다. 이들을 탓할 수 없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원칙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민재는 원칙을 해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정당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모든 원칙주의자가 이렇진 않지만 목적과 과정의 중요도가 도치되면서 발생되는 현시대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그런 민재가 잠시 원칙을 내려놓고 옥분과 영어로 대화하고 삶을 나누면서 점점 변화하게 되는데 여기서 아쉬운 점이 발견된다. 시장 상인들의 위해서 다시 원칙을 들이밀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을 빌어 나는 발을 빼게 된다. 별다른 해결책이 없었던 것인지 후반부에 중요한 이야기에 더 치중했던 것이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에서 민재의 이러한 잘못을 스스로 목적성에 중점을 두어 풀어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포스터에도 있듯이 이 영화는 할 말이 있는 영화였다.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옥분은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숨겨왔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묵인할 수 없기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그렇게 보낼 수 없기에, 자신의 가족 앞에 당당히 서기 위해 오래전에 했었어야 하고 지금도 늦지 않은 그 말을 하기로 한다. 옥분 스스로가 부끄러워했던 과거는 사실 누구에게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옥분의 사정을 몰랐고 그동안 숨겨왔던 그녀에게 울분을 토하는 마트 주인처럼 그녀에게 필요한 건 그 누군가의 용기와 격려가 아닌 옥분의 마음가짐이었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녀들은 피해자일 뿐 숨고 은폐할 필요가 전혀 없는 존재인 것을.



좋은 소재 좋은 형식이었지만 아쉬움이 정말 많다. 특히 미국 위싱턴으로 넘어가 일본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할 때 그녀를 돕고자 뒤따라갔던 민재의 행동이 아쉽다. 억지스러운 면이 다분했고 개연성도 부족했다. 민원 신고자 나옥분에서 위안부 나옥분으로 연결되는 연결점도 부족했고 민재의 동생의 역할이 조금 많이 의아했다. 앞서 말했듯이 행정적인 문제의 해결 방식 또한 아쉬웠고 위안부 이야기로 흘러갈수록 먼가 중심을 잃고 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해야 하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명확한 나머지 주위를 살피지 못한 느낌이랄까. 한 번만 더 고민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감히 이야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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