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일이 하나 없고, 믿었던 내 편에게서 차가운 뒷모습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절망한다. 그리곤 재수 없는 하루였다며 고단함을 삼켜버린다. 결국 우린 도망치듯 잠에 들어버리곤 한다. 그런데 꿈속에서 대단한 행복을 누리는 것보다 미소 한번 짓게 만드는 경험을 한다면 그 하루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보스니아 내전 후 엉망이 된 마을에 구호단체로 투입된 요원들의 행적을 그린 영화 <어 퍼펙트 데이>는 참담한 현실을 마냥 슬프고 힘들게만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보스니아 내전 후 마을에 유일하게 식수를 제공하는 우물에 알 수 없는 시체가 발견된다. 사람들에게 물을 제공하고 안전을 위해 투입된 국제구호요원 맘부르(베니시오 델 토로)는 시체 처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자 동료 B(팀 로빈스)와 소피(멜라니 티에리)를 부른다. 사방이 지뢰로 가득한 현장에서 가까스로 도착하지만 UN에서 절차적인 이유로 시체 처리를 제지한다. 직접 해결하기로 한 맘부르와 동료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밧줄과 여러 물품을 얻으려 마을을 돌아다 게 된다. 그러다 또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꼬마 니콜라를 만나게 되고 팀에 합류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UN이 이 사태에 발목을 잡아 시체를 처리할 수 없게 됐지만 기적처럼 마른 얼굴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게 된다.
참담한 현실을 시각적인 효과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도 누구보다 그 상황을 잘 전달해서 감탄했던 작품이다. 보통의 전쟁영화나 큰 사건이 몰아치고 지나간 이후의 이야기들은 당시 사건이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나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개인적인 역사를 시각적으로 들려준다. 반면에 <어 퍼펙트 데이>는 과거의 일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부상당한 사람들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 일이 있고 난 후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이곳에 남아 살고 있는 소년 니콜라, 우물로 물을 공급받아야 하는 마을 사람들, 가족들의 행방을 알 수 없어 돈을 주고서 길을 떠나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지 과거의 사람들이 어떤 고통 속에서 어떤 죽음을 당했는지에 대해 회상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 남아있는 현장에 대한 시각적인 효과는 있지만 시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신자들이 어린아이들을 성추행, 폭행한 점에 대해 파헤치는 기자들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도 그 사건 당시의 회상이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자란 지금의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공통적으로 이 두 작품 모두에서 이 점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여러 가지 있다. 전쟁 이후 현지인들은 당장 우물이 오염돼서 물도 못 마시게 생겼는데 외부인이 왔다는 걸 신기해하고 서로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또 구호단체 동료들은 시종일관 서로를 디스 하면서 웃고 떠든다. 바로 앞에 지뢰가 있어서 팔다리가 사방으로 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소 위로 트럭을 모는 실험을 한다. UN은 언제나 그랬듯 절차적인 문제로 답답하게 군다. 그 와중에 꼬마에게 축구공을 줘야겠다며 맘부르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로 핸들을 튼다.
요약해보자면 밧줄과 축구공을 찾아오는 간단한 이야기지만 이 속에서 전체를 보여준다. 가는 와중에 만난 사람들, 이곳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사람들, 길을 막는 지뢰들, 일처리 하나 못하는 윗사람들. 이것들을 통해 전쟁이 낳은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지를 비롯해 밧줄 하나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전쟁이 사랑하는 이웃을 어떻게 갈라놓고 어떤 선택들을 하게 만들었는지를 빼놓지 않고 보여준다. 부분으로 전체를 한 번에 비추고 동시에 이 전체가 얼마나 극심한 피로를 낳고 있는지 단번에 보여준다.
평범한 구석이라곤 하나 없는 이 작품은 블랙코미디이기 이전에 유쾌한 영화다. 트럭에 액셀을 밟을 때마다 펑키 한 음악이 귀를 때리고 구호단체 동료들의 소소한 개인 사정까지 겹쳐 유쾌함의 절정을 이룬다. UN의 답답한 행동들과 치솟을 때로 치솟은 관료주의는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그들을 욕하는 동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통쾌함을 느낀다. 지뢰를 발견할 때마다 무섭기보단 이젠 어떤 미친놈 같은 방식으로 저 길을 지나갈지 궁금해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건 하나를 진지하게 비추는 영화도 좋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적으로 바라는 것은 전쟁 이후에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고 절망 끝에 찾아오는 빗방울이다. 모든 영화는 관객에게 좋던, 나쁘던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까지 함께한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마음의 요동침을 선사한다. 모든 영화가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불행으로 가득한 내 하루를 완벽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영화를 많이 만나보고 싶다.